여론조사 순위조작, 비판·우호적 기사 노출로 여론 왜곡

4·13총선에서 여론을 조작하려 한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여론조작에는 언론이 직접 관여하거나 이용됐으며, 일부에서는 언론을 사칭하기도 했다.

대검찰청은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까지 입건된 선거사범은 모두 1천451명이라고 밝혔다.

흑색선전(606명), 금품선거(260명) 사범이 예상대로 가장 많았다.

눈에 띄는 것은 여론조작 사범이 114명으로 세 번째 순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여론조작 사범은 19대 총선 당시 35명보다 많이 늘어난 규모다.

정당들이 후보 경선에 여론조사를 활용하면서 여론조작의 유혹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작의 수단으로는 언론 동원됐다.

언론 관계자가 직접 여론조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 "원하는 결과 뽑아드립니다"…제멋대로 여론조사



청주지검은 총선 후보 지지도 조사결과를 왜곡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여론조사 업체 대표 A씨를 구속기소 했다.

여론조사를 의뢰한 인터넷 언론매체 대표 B씨도 구속기소 됐다.

A씨는 지난 2월께 청주시 서원구 총선 여론조사 결과에서 2순위 예비후보를 1위로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조작된 결과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매체를 통해 보도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특정 후보를 도우려고 하지도 않은 여론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한 혐의로 한 대학교수를 구속했다.

언론사를 사칭한 여론조작 범죄도 있었다.

전북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언론사를 사칭해 불법 여론조사를 한 혐의로 기획사 대표와 텔레마케터 등 2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충남도 선관위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피조사자를 선정해 여론조사를 한 혐의로 예비후보와 여론조사 관계자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예비후보가 과거 지방선거 출마 당시 확보한 전화번호,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 등 2만2천여 개를 이용해 여론조사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후보에게 우호적인 샘플을 활용했을 뿐 아니라 상당수 답변자는 응답률이 낮아 가중치가 부여되는 20∼30대로 나이를 속이도록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충남도 선관위는 또 특정 후보 지지율이 높은 가중치 보정 이전 조사 결과자료를 마치 최종 결과자료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자원봉사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는 11개 언론기관이 보도했다.

◇ "우호·비판적 기사 노출로 우리 후보 평판 올리자"
특정 후보에게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기사로 여론을 왜곡하는 '고전적인 수법'의 일부 언론 행태도 여전했다.

경기도 포천시 선관위는 경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에게 우호적인 칼럼을, 경쟁 후보에게는 비판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한 혐의로 인터넷신문 관계자를 고발했다.

경남도 선관위도 이번 총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추천하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주간 신문사, 인터넷매체, 지역 신문사 관계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일부는 '의도적 기사'가 실린 신문 발행 부수를 늘려 배포하고 전체 8면 중 2면에 특정 후보 특별 대담 기사를 실어 배포한 경우도 있었다.

홍보 기사를 통해 해당 후보를 도우려는 이같은 여론조작 행위와 반대로 특정 후보 비판 기사를 선거에 이용하려 한 사례도 적발됐다.

인천시 선관위는 경쟁 후보에게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를 복사해 배포한 혐의로 모 후보 선거사무원을 고발했다.

이 사무원은 기사를 복사한 유인물을 영종도 삼목항 대합실에 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권선거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여론조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앞으로도 선거에서 여론조사 왜곡 사례는 빈발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당내 경선이 대부분 여론조사 방식으로 시행되고, 대다수 후보자가 여론조사를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부정선거 방식이 '돈'에서 '거짓말'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여론조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선거풍토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흐름 판단' 정도의 참고자료가 아닌 '후보 결정'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광주시 선관위 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박흥식 위원은 "여론조사의 한계를 무시한 채 그 자체만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풍토나, 누가 일등인지, 순위가 바뀌었는지, 격차가 좁혀졌는지에만 집중하는 경마식 보도가 여론 왜곡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은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시야를 좁혀 여론조사 의존도가 높아지고 후보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만 발췌해 발표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며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샘플을 추출해 공정한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추이의 변화 등을 판단하는 참고자료 정도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