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세계인 사로잡은 K문학…그 뒤엔 '소설 파는 남자'가 있다
2012년 3월 홍콩 콘래드호텔에서 ‘2011 맨아시아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맨아시아문학상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후원하는 맨그룹이 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제정했다. 시상식에는 후보인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 인도의 아미타브 고시 등 아시아 유명 작가들이 참석했다.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후보에 오른 신경숙 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수상자로 신씨의 이름이 불리자 출판 저작권 중개 에이전트인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51)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문학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10만부 이상 판매한 뒤 세계적인 문학상까지 받도록 하겠다는 그의 꿈이 모두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이 대표는 올해 들어 소설가 한강 씨의 활약에 고무된 모습이다. 그가 영미권에 소개한 한씨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유력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2개국에, 소년이 온다는 영국 네덜란드를 비롯한 9개국에 판권을 수출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문학의 세계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한씨는 해외 문단에서 입지를 다지고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학비 벌려고 시작한 에이전트 생활

이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저작권 에이전시인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한 게 1995년. 외국에서 출간된 소설을 국내 출판사에 소개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서 출판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어요.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 더 즐거웠죠. 그렇게 유명해진 작가가 ‘내가 알린 사람’이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고요.”

처음엔 적당히 학비를 번 뒤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점점 에이전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에이전트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목표를 품게 됐어요. 외국 출판물을 수입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좋은 책을 외국에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1990년대 말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동하는 저작권 담당자들에게 한국 도서를 수입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답은 ‘노(No)’였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꿈을 접었다.

2000년대 들어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불자 이 대표는 아시아에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에 주목했다. 실용서와 학습만화가 중화권에서 성공을 거두자 문학에서도 가능성이 보였다. 문학작품 수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이 대표는 2005년 소설가 김영하 씨를 ‘1번 타자’로 지목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꽃》 《아랑은 왜》 등의 작품은 외국 독자들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이 대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를 에이전트로 삼았다. 이 대표는 뉴욕으로 날아가 그동안 교류하던 미국 현지 에이전트인 바버라 지트워를 만났다.

“이전에도 지트워에게 몇 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좋은 한국 소설이 있으면 미국에서 출간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소개하니 바로 관심을 보이더군요. 두 달 뒤 미국의 문학전문 출판사 하코트로부터 ‘영문 판권을 사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 문학을 영미권에 알리겠다는 꿈은 그렇게 이뤄졌죠.”

안정된 직장 버리고 한국 문학 전도사로

2008년 10월 이 대표는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올라왔다가 길 잃은 어머니를 가족들이 찾아 헤매다 새삼 엄마의 존재를 깨닫는다는 줄거리를 접한 순간 이 작품은 꼭 외국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엄마’라는 보편적 소재와 ‘한국의 엄마’라는 독창적 소재가 외국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죠.”

50쪽 분량의 원고를 사전 번역해 외국에 소개하자마자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스페인 독일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저작권을 사겠다고 나섰다. 미국에선 유명 출판사 크노프가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하기로 했다. 초판을 10만부 찍겠다는 파격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이 대표는 “경험상 10만~20만부를 찍으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0~20위권에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직감했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에서 20만부가량 팔리며 뉴욕타임스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임프리마코리아에서 상무까지 오른 그는 2011년 봄 독립해 KL매니지먼트를 차렸다. 한국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독립 초기엔 사무실도 구하지 못하고 집 베란다를 사무실로 삼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당당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회사가 바라는 것처럼 외국 서적 수입도 병행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한국 문학 수출에만 온 힘을 쏟고 싶었거든요. ”

국내에서 사랑받아야 해외진출 쉬워

그는 김영하 신경숙 외에도 조경란 공지영 황선미 이정명 안도현 등 많은 소설가를 영미권에 소개했다. 정유정 씨의 장편 《7년의 밤》은 지난해 독일에서 번역·출간돼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그가 소개한 책들이 외국에서 호응을 얻자 이제 외국 에이전트로부터 “이구용이 추천한 소설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작품도 영미권에 진출하려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과정은 똑같다. 하지만 영미권에서 유럽 작가와 아시아 작가의 인지도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 더 많은 한국 작가와 소설을 외국에 알리고 싶은 이 대표로선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국내 에이전트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는지 신기하다고 해요. 저작권 수입 업무도 불황인데 수출은 더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문학 저작권을 수출해서 건물 하나 지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너도나도 달려들었을 겁니다. 영미권과 유럽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더 있어도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더 빨라졌을 텐데…. 아무나 붙잡고 강제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안타깝죠.”

이 대표는 문학 속에는 한국의 음식·언어·복식 등 다양한 문화와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어 이를 한번에 소개하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더 많이 읽게 하려면 한국 독자부터 우리 문학을 더 사랑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한국에서 다양한 작품이 뿌리내리고 인기를 얻어야 외국에 더 많은 작품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순문학이니 대중문학이니 하는 구분은 시장에서 아무 소용없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독자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원합니다. 추리, 로맨스, 공상과학(SF)소설 같은 장르도 성공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작품이 외국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출판 에이전트의 세계

해외서적 소개·신인작가 발굴
작가와 출판사의 '징검다리'


[人사이드 人터뷰] 세계인 사로잡은 K문학…그 뒤엔 '소설 파는 남자'가 있다
출판 에이전트는 작가와 출판사를 잇는 징검다리다. 외국 서적을 수입하거나 한국에서 출간된 책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출판사 대신 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해 출판사에 연결해주는 것도 에이전트의 주요 업무다. 저작권 계약에 성공하면 보통 인세의 10% 안팎을 보수로 받는다.

에이전트의 기본 임무는 좋은 책을 발굴하는 것이다. 에이전트들은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외국 서적이 국내에서 통할 만한 내용인지 확인한 뒤 상대 국가 에이전트와 협상한다. 이후 국내 출판사를 상대로 출간 의사를 확인한 뒤 계약한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처럼 수출에 주력하는 에이전트의 작업은 좀 더 복잡하다. 외국에 소개하려는 한국 작가의 약력, 작품세계, 수상 경력 등을 영어 문서로 작성하고 30~50쪽 분량의 번역 원고 샘플을 준비해야 한다. 원활한 세일즈를 위해 해당 국가 언어는 물론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주요 작가, 출판사와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적 친화력과 경력도 중요한 요소다.

이 대표는 “다른 요소도 중요하지만 인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책 한 권을 수출하기 위해 작가 발굴, 원고 검토, 영문 자료 작성, 협상, 계약을 하는 데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계약을 하지 못하면 에이전트의 수입은 없다. 책이 많이 팔릴수록 보수를 많이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작권만 판매해서는 이익을 보기 어렵다. 그는 “수출 에이전트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버티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글=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