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햇살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 어렸을 적 설에 동네 세배를 가면 문간에 신춘대길(新春大吉)을 붙여놓은 것을 보고 아직 추운 겨울인데 웬봄? 하고 의아해하곤 했는데, 동지를 기점으로 양(陽)의 기운이 점점 커져 설에는 햇살에서 새봄이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설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듯 경제도 활기를 띠곤 한다. 설빔도 마련하고 세뱃돈도 두둑이 주고받고 과일이나 떡 등 먹거리도 풍부해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이번 설은 한파로 인한 추위만큼이나 다소 썰렁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소비자동향지수’에 의하면 1월 소비자지수는 작년 메르스사태 직후인 7월 이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경기둔화 우려와 금융시장 충격 등이 원인인 듯한데 취업기회전망지수가 2009년 3월 이후 6년10개월 만에 최저인 점도 한몫한 것 같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6개월 후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향후경기전망지수도 2012년 1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았다.
세계가 불경기로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한편으론 ‘어려우니까 명절인 것’이기도 하다. 과거 어려운 시절에도 설 명절에는 잠시나마 마음을 풀고 즐거움을 누렸듯이 이번에도 우리 마음의 풍성함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 가지, 설에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설 선물을 우리 농산물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설빔을 입고 우리 농산물을 손에 들고 친지와 어른을 방문하는 모습이야말로 비로소 설임을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다. 이에 더해 농촌 경기가 다소나마 살아난다면 이 또한 새봄맞이에 하나의 격려가 될 듯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의하면 2013년 설과 추석에 과일(사과배) 생산량의 24.9%, 24%가 유통됐다고 한다. 소고기도 명절이 포함된 1월과 9월 도축량이 전체의 22.9%를 차지한다고 한다. 설과 추석의 우리 농산물 소비가 농업을 지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소비자도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산다고 한다. 스마트한 소비자라면 설 선물로 우리 농산물을 구입하면서 설 분위기도 느끼고 새봄의 향취도 불러옴 직하다. 그로 인해 농촌의 설 분위기가 밝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 한다.
이덕승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