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평양에 간 기녀복
내 눈을 틔우고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 옷 한 벌이 있다. 석주선박물관에서 봤던 기녀복이다.

분홍치마에 녹두색 저고리. 먹자주색으로 깃과 고름을 달았는데, 고름과 배래가 모두 좁았다. 저고리가 몸에 딱 붙으면서 길이가 짧았고, 치마는 뒤로 걷어서 풍성하게 주름잡혀 있었다. 오래된 옷이라 퇴색했지만 처음의 그 화사함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기녀복과 연관된 에피소드로 빼놓을 수 없는 게 평양 패션쇼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평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통일을 바라는 평범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복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이었다.

2001년 문화관광부에서 “김대중 대통령 방북 1주년으로 북한 측에서 한복 패션쇼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연락이 왔다. 난 쇼뿐만 아니라 쇼 이후 한복을 기증하고 싶었다. 시대에 맞게 변해가는 아름다운 한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량복 200벌과 한복 300벌을 새로 준비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옷감과 약품, 화장품 등도 많이 챙겼다.

평양에 도착해 패션쇼 리허설을 하려니 벽에 부딪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쇼 내용과 옷에 대해 여러 제한을 뒀다. 가장 큰 문제는 기녀복이었다. 북한 측에선 “쇼 가운데 기녀가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을 빼라”고 말했다. 기녀복 자체를 하지 말라는 입장에 더 가까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내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반박했다.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옷”이란 이야기를 하루 종일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다행히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남자를 유혹하는 설정의 연출은 빼지만 대신 기녀들이 춤추면서 옷을 보여주는 연출로 기녀복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패션쇼가 시작됐다.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감동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피날레에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패션쇼와 촬영이 끝나고나서도, 가져갔던 500여벌의 옷을 기증하고 돌아오면서도 자꾸 뭔가 더 주고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아쉬움과 마음속 벅차오르던 뜨거움은 같은 문화를 지닌 민족의 핏줄이기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영희 < 메종 드 이영희 대표 leeyounghee@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