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해 12월 ‘한국 반도체 인력 쓸어가는 중국…삼성 출신 연봉 9배 주겠다’는 기사를 쓴 뒤 이메일을 수십 통 받았다. 처음엔 한두 통 오고 말겠지 싶었는데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중국 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헤드헌터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내용도 많았다. 특히 삼성전자의 연말 인사가 끝난 뒤에는 퇴직자들의 문의가 상당했다.

사정도 다양했다. “권고 사직을 당했다. 노모가 아프셔서 꼭 일을 해야 한다”는 사연도 있었다. 반면 “현직 대기업의 반도체 관련 핵심부서에 있다. 더 나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이직을 희망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기업에선 매년 퇴직자가 생겨난다. 올 연말엔 더 늘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반도체값이 급락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인력의 중국 이동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인력 이동을 막을 방법은 마땅히 없다. 첨단기술 유출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인력 이동에 따른 첨단기술 유출은 증명이 쉽지 않다. 중국에라도 가서 일해보겠다는 퇴직자들을 못 가게 할 수도 없다. 과거 한국 전자업계도 일본의 퇴직 엔지니어들을 불러온 적이 있었다.

정부와 업체들이 머리를 모아 인력 유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직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는 듯하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업체 퇴사자들을 국책연구소 등에 재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했으나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흐지부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도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직원들에게 기술유출 적발 때 처벌 등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 개발이며 신기술 인력 양성이다. 한국은 세계 2위 반도체 강국이지만 여전히 특허는 미국, 일본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이 따라하지 못할 원천기술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 반도체를 역전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중국의 자금과 인력이면 10년 안에 한국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