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씨, 이병철·이건희 회장 일가의 수집 이야기 펴내

"이병철 회장이 '청자 마니아'라면, 이건희 회장은 '백자 마니아'였다."(81쪽)

1976년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미술관 설립과 개관 및 운영을 위해 특별채용돼 학예연구실장, 부관장을 지낸 이종선(68)씨가 '리 컬렉션'(김영사)을 냈다.

책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수집 스타일, 컬렉션 과정, 수집을 도왔던 문화계 관계자, 삼성가와 내부 인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가난한 형편에 외국 유학은커녕 대학원 이수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은사의 '지시'로 삼성으로 향했다고 말한다.

이어 "시샘과 질타는 물론 각종 사회적 사건들에 얽히고설킨 오해들이 쌓여가며 삼성가의 수집은 순수한 개인의 열망으로만 비춰지지는 않았다"며 "항상 시끄러운 구설수가 뒤따랐고 겨우 자리 잡은 수집품들이 온전하게 자리를 보전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애틋하고 간절한 갈망이 없었다면 이들의 '수집'이 그 수많은 풍파를 헤치고 나라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오늘날 대중에게 선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수집 자체를 너무 서두르거나 고가의 작품에 휘둘리지는 않았"으며 이건희 회장은 "영화광으로서의 수집력을 발휘했고, 그런 바탕 위에서 수집가의 면목를 갖추어갔다"고 저자는 바라봤다.

책은 이병철 회장에 대해선 '절제의 미학'으로 제시했다.

이건희 회장과 관련해선 '명품주의'로 키워드를 뽑고 이른바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서울의 리움미술과 용인의 호암미술관에는 국보 37건, 보물 115건이 전시 또는 보관돼 있다고 한다.

책은 이병철 회장의 애착이 대단해 "복제품을 만들어 진품 대신 전시하도록 지시했다"는 가야금관(국보 제138호), 방탄유리로 쇼케이스를 제작했다는 청자진사주전자(국보 제133호), 당시 상공부 고시를 거쳐 해외에서 처음으로 정식 '수입'했다는 아미타삼존도(국보 제218호)를 소개한다.

고구려반가상(국보 제118호)에 대해선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던 김동현 씨 이야기를 꺼낸다.

책은 김씨가 인부로부터 구입한 반가상을 한국전쟁 중에도 품에 지켰고 그로부터 이를 인수할 수 있었다고 소개한다.

"요즘 세상에 그분 같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거들먹거릴 일만 찾을 뿐, 김동현의 경우처럼 평생을 걸고 반가상 한 점을 지키고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신의를 찾을 수 없다."(119쪽)

저자는 책 마지막에 "박물관을 찾아가보라 권하고 싶다"며 "박물관 안에 있는 자신을 접하는 순간, 삶의 어떤 의미 이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적었다.

책을 덮지 않고 다시 한번 서문의 마지막 글을 되짚어봤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라고 적었다.

이씨는 연합뉴스 전화 통화에서 책 내용과 관련해 "요즘에는 미술품으로 재테크하는 경우도 많으니 오해의 여지가 많을 수 있다"며 "삼성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삼성과 삼성가 사람들이 오해와 시기, 질투가 많았음에도 미술관을 만든 것은 '공적인 환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수집품으로는 책에 자신이 "이건희 회장의 출근을 막아서서 결재 처리"했다고 소개한 달항아리 등을 꼽았다.

320쪽. 1만8천원.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js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