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적 이성을 찾아야 할 때
연초부터 한국 경제가 삐걱대고 있다. 작년보다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요 경제 예측기관은 2%대 성장률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개혁 없이는 더 이상 고성장이 어렵다”, “과거 영광을 생각할 때 한국 경제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는 등 전문가의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경제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넘어갈 수 있는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포퓰리즘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나 재정안전성 같은 주요 경제지표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채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개혁·구조개혁 관련 입법이 대책 없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곡된 정치가 건전한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5년 만기 면세점 사업권 제도야말로 대표적 사례다. 2012년 관세법 개정으로 사업권 기간이 종전의 10년에서 5년으로 줄어들었다. 재벌 특혜를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5년 한시법으로 인해 탈락한 면세점에서 일하는 2000여명의 실직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해외 주요 명품업체는 신규 입점을 꺼리고 있다. 정치 논리로 급조된 법 때문에 죄 없는 근로자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에 따른 1조원 규모의 농어민 지원기금 조성은 또 다른 포퓰리즘의 폐해다.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수협 등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조성한다고 한다. 민간기업에는 또 하나의 준조세다. 애꿎은 기업에 혹 하나 더 달아준 꼴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31개 조사 대상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비가 작년에 2조6000억원에 달했다. 우루과이라운드 쌀시장 개방 때도 조성된 농가지원금이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법인세율 인상 주장도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주요 경쟁국은 앞다퉈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은 세율을 2011년 28%에서 작년 20%로 낮췄다. 싱가포르도 20%에서 17%로 세율을 인하했다. 미국도 의회를 중심으로 35%에서 28% 선으로 낮추려는 논의를 시작했다. 한국의 법인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는 글로벌 트렌드다. 조선 철강 화학 등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고 한·중 제조업 기술 격차도 3.3년으로 줄어들었다. 더 이상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실책을 범해서는 안된다.

작년 11월 교수, 전직 관료 등이 중심이 된 1000명 지식인 선언은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의 포로가 돼 위기 대처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를 밝힌 바 있다. 노동개혁법안, 서비스산업기본법,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원샷법’ 등이 시급히 통과돼야 한다.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등을 의식한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정책 절벽’을 가속화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지난해 4분기 제조업 부문 정체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산업 선전에 힘입어 5.7% 깜짝 성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정치 실패가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초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파당 정치가 국민 경제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는 주장이다. 왜곡된 정당 정치는 전통적인 ‘1인 1표’ 사회를 변질시키고 있다. 삼류정치가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주범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타협의 정치’ ‘합의의 정치’는 실종되고 거부 민주주의(vetocracy)의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 중우정치(衆愚政治)가 정치 양극화에 안방자리를 내준 꼴이 됐다. 정치적 실패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과거의 정치’를 불러온다. 스페인 속담처럼 ‘앞을 보지 않는 사람은 뒤처지게 되는 법이다’. 정치적 포퓰리즘 대신에 경제적 이성이 힘을 얻는 2016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