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가 떨어지면서 자산운용시장의 중요성이 한층 더 커졌다. 1%대까지 떨어진 은행 이자로는 노후 준비가 힘들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금융투자시장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금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쏟아지는 것도 자산운용업계에 호재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던 자금이 펀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개인 중심에서 기관 주도 성장

국내엔 87개의 자산운용사가 있다. 이들이 굴리는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812조원이다. 이 중 펀드에 유입된 돈이 424조원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돈을 굴려주는 투자일임 계약에 들어가 있다. 지난해 자산운용사들은 쏠쏠한 이익을 냈다. 순이익은 200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순이익은 15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2%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돈이 되는 개인 고객의 자리를 기관이 대체하고 있어서다.

자산운용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인 중심에서 기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개인들이 시장을 주도할 때는 수수료가 비싼 주식형 펀드가 대세였다. 펀드에 1000원이 들어오면 매년 5~6원씩을 자산운용사가 떼갈 수 있는 구조였다.

기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관은 수수료가 싼 채권형 펀드를 선호한다. 개인만큼 높은 위험부담을 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갇힌 것도 주식형 펀드 매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채권에 대한 기대 이익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체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 대다수는 여전히 채권형 펀드 중심으로 자산을 굴리고 있다.

자산운용시장이 기관화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이 가져가는 운용보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 수수료가 싼 채권형 펀드의 비중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기본 수수료율 체계 자체가 다르다. 기관은 한번에 수백억, 수천억원을 맡기기 때문에 개인보다 훨씬 낮은 보수율이 적용된다. 자산운용업계의 평균 보수율은 2007년 0.58%에서 지난해 0.28%로 쪼그라든 상태다. 투자자문사들이 사모펀드 시장에 가세하고 있는 만큼 운용보수 인하 압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연금자산, 주식·채권 비중 증가

그나마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자산운용업계에 힘이 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 비과세 해외투자전용펀드가 도입된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개인들의 자금이 해외 주식형 펀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해외 상장주식 투자 비중이 60% 이상인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 해외 주식 매매·평가 차익과 이에 따른 환차익에 대한 배당소득세(15.4%)가 비과세된다. 2017년 말까지 가입하는 투자자에 한해 1인당 3000만원 한도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해외주식형펀드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자금순유입으로 전환했다”며 “세제혜택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의 해외투자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금시장이 원금보장형 상품에서 투자 상품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이 보이는 것도 자산운용업계에 호재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자동투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식을 지정하지 않으면 시장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실적배당형 상품에 자금을 넣어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주식, 채권 등이 포함된 대표상품을 마련, 자동투자 옵션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연금 자산이 주식과 채권시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과 채권을 담은 상품은 자산운용사들의 펀드밖에 없는 만큼 자산운용사 수탁액이 빠르게 불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개인연금(289조원)과 퇴직연금(111조원)에 적립된 자금은 400조원에 달한다. 이 중 90% 이상이 예금, 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