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세금 낮춰 '기업천국'으로 거듭난 아일랜드
2010년 11월18일. 패트릭 호노한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정부가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안을 협상 중”이라고 실토했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집권당은 세간에 도는 구제금융 임박설을 일축하며 “최악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주장하던 터였다.

그 정부가 실상은 구제금융안을 놓고 막후 협상 중이라고 중앙은행 총재가 폭로성 발언을 했으니, 온 나라는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의 허상이 황망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던 집권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아일랜드는 완전고용 달성의 축배를 들었다. 1995~2008년 영국을 앞서며 연 6~9%대의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는 부동산 투자 위주의 거대한 자산 거품에 잠식돼 속으로 곪는 중이었다. 1996~2007년 부동산 거품으로 집값이 네 배로 뛰었는데,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자산거품 형성 시기 미국 주택 상승세의 두 배나 됐다.

2011년 출범한 새 정부가 직면한 상황은 암담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으로서 외환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긴축재정, 구조조정 등 가혹한 내핍을 요구받았다. 공공부문 고용 동결로 경찰학교 졸업생들은 3년이나 임용을 기다려야만 했다.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율(12.5%) 등을 통한 적극적인 해외 투자 유치였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긴축정책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된 중요 요인인 것은 맞지만, 경제위기를 겪은 다른 나라와 달리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이들 투자 기업이 경제 회복에 이바지한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아일랜드 정부는 기존 주력 산업과 새로운 유망 분야를 가려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고부가가치 산업 및 서비스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정책 로드맵을 짰고 아일랜드투자진흥청(IDA)을 필두로 부처 간 협업체계를 강화했다.

"구글·애플 등 외국기업 몰려와…수출 늘고 창업도 급증"

[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세금 낮춰 '기업천국'으로 거듭난 아일랜드
기존의 발달된 소프트웨어산업을 바탕으로 신(新)산업 분야인 사물인터넷(IoT), 인터넷태생(born on the internet)산업, 클라우드 서비스, 데이터 센터 등을 집중적으로 유치했고 탄탄한 제약 및 의료기기산업을 바탕으로 첨단 바이오 의학 분야 투자 유치에 주력했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 이미 정평이 나 있던 아일랜드 정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전 부처가 더욱 혼연일체가 됐다. 치밀하고 전략적인 해외 투자 유치 패키지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이 꾸려졌다. 유로존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으로서 EU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기치 아래 낮은 법인세율, 젊고 숙련된 노동력(인구의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 친(親)기업적 환경(2013년 포브스지 선정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 매력 포인트를 부각시켰다.

그 결과 경제위기 와중에도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한 외국 기업들은 아일랜드에 대한 투자를 더 확대했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유럽본부를 두고 있다. 구글 유럽본부는 2004년 더블린 사무소 개설 당시 직원 수가 50명도 채 안 됐는데, 경제위기 속에 사업을 크게 확장해 현재 2500명이 넘는 고급 인재를 고용하고 있다. IDA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경제위기 기간인 2012년에만 해외 투자 145건을 유치했다. 그 결과 1만3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양질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수출 증대, 고용창출 및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다발적인 효과를 내며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제는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했다. 수출도 바이오 의학, 정보통신기술(ICT) 등 해외 기업 투자가 활발한 첨단 분야 및 서비스 분야에서 크게 늘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서비스 무역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0%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아일랜드의 서비스 무역 규모는 GDP의 100%를 웃돌 정도로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무역의 예를 들어보자. 외국의 한 기업가가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을 희망한다면 그는 더블린에 있는 구글 유럽본부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받고, 더블린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자료를 저장한다. 이때 구글이 제공하는 고부가의 기술 서비스는 비전문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알고리즘으로 구성된다.

서비스 무역은 프로그래머, 금융 전문가 등 고급 인재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일으키면서 산업구조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ICT 서비스 분야는 2008년 2900여개에 불과하던 일자리가 2013년 1만2000여개로 증가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모이면서 일종의 클러스터 효과도 생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붐이 일고 있다. 한 예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커런시페어나 릴랙스페이먼트와 같은 환전 및 송금 전문 스타트업이 핀테크(금융+기술) 분야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들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결합이라는 유연한 마인드를 가진 젊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주도하는 기업이다.

2015년 12월 더블린 시내 상점가는 성탄절 쇼핑을 즐기는 인파로 넘쳐나고 식당도 몰려드는 손님에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경제위기 여파로 중단됐던 기간산업 건설도 재개돼 시내 중심가에선 트램 노선 증설공사가 한창이다.

2013년 12월 유로존 취약국 중 가장 먼저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2014년 EU 국가 중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희소식이 줄줄이 터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외자(外資)기업이 갖는 한계를 고려해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자생 산업 및 기업 육성, 구조적 실업자의 재훈련, 분배의 정의 실현 등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성공적인 해외 투자 유치와 고부가가치 수출산업 육성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아일랜드의 지혜가 돋보인다. 아일랜드 못지않게 수출의존적 개방경제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kihu85@mof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