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충실히 부양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부동산을 물려받은 자녀가 약속을 어겼다면 재산을 부모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유모씨가 아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에서 “피고(아들)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의 말소등기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유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 가회동에 있는 단독주택을 2003년 12월 아들에게 증여했다. 대지 351㎡에 세워진 2층짜리였다. 유씨는 당시 아들의 각서를 받아뒀다. “아버지와 한집에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아버지의 계약해제 기타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않고 계약해제 즉시 원상 회복 의무를 이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씨는 1주일 뒤 아들 이름으로 주택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마쳤다. 아들 내외는 1층에 살고, 유씨 부부는 2층에 거주했다.

유씨는 주택 외에도 임야 3필지와 주식을 아들에게 넘겼고 서울 낙원동의 토지와 건물을 팔아 아들 회사가 진 빚을 갚아줬다.

그러나 유씨에게 돌아온 것은 불효였다. 아들 내외는 부모와 한집에 살면서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고, 허리디스크가 악화해 스스로 거동할 수 없게 된 모친의 간병은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도우미 몫이었다. 아들은 급기야 유씨 부부에게 요양시설에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유씨는 주택을 팔아 아파트를 마련해 나가겠다며 등기를 도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해”라고 막말을 했다.

법원은 아들이 증여계약상의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집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담부 증여에서 부담 의무가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증여계약이 이행됐다고 하더라도 증여자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며 “피고가 원고 내외를 충실히 부양하지 않았다면 원고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불효자로 변한 자녀에게 소송을 건다고 언제나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서 등이 없으면 효도 계약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법 556조는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법 558조에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돼 있어 등기이전 등으로 재산이 완전히 넘어가면 재산을 돌려받기 어렵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은 지난 9월 부모 학대나 그밖에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 등이 있으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을 발의했다.

구상수 법무법인 지평 회계사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전 효도 계약서를 쓰고 싶다는 문의가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증여 때 계약서를 쓰고 공증을 받는 것도 방법이고, 재산이 많을 때는 한꺼번에 증여하지 말고 몇 년 단위로 나눠서 물려주면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부담부 증여

배우자나 자녀에게 부동산 등 재산을 증여하면서 채무 이행 등 조건(부담)을 다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부모 봉양을 조건으로 주택을 증여했는데 아들이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부모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