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유덕종 교수 "아프리카인 제자만 2000여명…우간다서 '군자삼락' 이뤘죠"
도전의 연속이었던 아프리카
1992년 정부파견의사로 우간다행…열악한 시설·에이즈 환자 보고 놀라
교실선 동양인 차별에 스트레스 극심

23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즐거움
천하의 영재 길러내는 재미 느껴…존중 받으려는 욕심 내면 봉사 아냐
내년엔 에티오피아 가서 활동하고파…아산상 상금은 우간다 위해 쓸 것


“30분 정도면 인터뷰 끝나죠? 별로 말할 것도 없는데….”

그의 입은 무거웠다. 남방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멋쩍어하며 짓는 미소는 질박했다.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그의 직업이 의사인지도, 20년 넘게 동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수천명의 제자를 길러 ‘우간다 의사들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의대 교수란 사실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최근 대구 경북대병원에서 만난 유덕종 우간다 마케레레대 의대 명예교수(56·사진)의 첫인상은 너무나 평범했다. 그리고 그 평범함만큼이나 자신을 드러내길 꺼렸다.

유 교수는 지난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주는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이란 타이틀은 하나의 반짝이는 점과 같았다. 그 ‘점 하나’를 찍기까지 삶에서 이룬 수많은 ‘점’과 ‘선’, ‘면’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수상 소감 대신 “왜 의사가 되고 싶었느냐”는 질문부터 건넸다. 눈빛이 달라졌다. 30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어느덧 네 시간으로 길어졌다.

서른 셋 젊은 의사, 우간다로 떠나다

“전 10대 시절 허무주의자였습니다.”

뜬금없이 들리는 말이었다. 유 교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정말 하고 싶고, 그만큼 세상에 소중한 뭔가를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막연히 ‘아프리카 대륙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가졌죠.”

의사가 된 이유는 그의 부친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보건소 공무원으로 근무하셨어요. 당신이 보기엔 의사야말로 최고 직업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 고향이 대구인데요, 늘 제게 ‘넌 꼭 경북대 의대 가서 의사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78년 경북대 의대에 입학한 직후부터 “난 꼭 해외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그때 날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였다”며 “하나는 ‘진짜 미친 놈’이란 비아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자기 뜻을 계속 밀고 나가는 녀석’이라는 칭찬이었다”고 회상했다.

1984년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가 된 유 교수는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1991년부터 1년간 경북 안동병원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1992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정부파견의사 모집 공고를 봤다. “같은 과 선배가 ‘네가 그토록 찾던 게 이거 아니냐’며 의사회지에 난 KOICA 정부파견의사 관련 안내를 보여 줬어요. 거기에 파견 예정지 중 우간다가 있었어요. 곧바로 신청하고 1992년 떠났죠.” 당시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세 역할의 무게…‘의사’와 ‘교수’, ‘가장’

우간다에서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버거웠다. 유 교수는 “우간다는 빈부 격차가 아주 극심한 곳”이라며 “병동 의사로서 환자를 돌볼 때와 의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느낌이 참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보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 빈민이 대부분입니다. 치료비가 없고, 교통이 불편해서 거의 죽기 직전이 돼서야 병원을 찾기 때문에 ‘과연 치료를 받으러 오는 건지, 죽으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한탄마저 나올 정도죠. 그런데 마케레레대 의대 학생과 교수들을 보면 대부분 부유층 출신이에요. 마케레레대는 동아프리카에서 1922년 최초로 세워진 국립대학이고, 현지에서 대단한 명문입니다. 영국식 교육 시스템을 따르고 있고, 이 대학에 오는 학생들은 동아프리카에서 상위 0.1%에 드는 엘리트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온 교수를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어요.”
[人사이드 人터뷰] 유덕종 교수 "아프리카인 제자만 2000여명…우간다서 '군자삼락' 이뤘죠"
우간다의 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병실은 늘 모자랐다. 1996년이 돼서야 정맥 수액이 정식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수액을 직접 제조해야 했다. 유 교수는 “입원 환자의 70~80%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라며 “대다수 환자의 사망 원인이 HIV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호흡기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HIV 감염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각종 열대병도 마찬가지고요. 그저 그런 질병이 있다는 정도만 이론적으로 공부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막상 우간다에 가 보니 환자 대부분이 제가 치료한 경험이 없는 질병에 걸려 있었어요. 거기서부터 숨이 턱 막혔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마케레레대 의대 교수로서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은 언어와 동양인에 대한 차별 어린 시선이었다. 우간다는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해야 했다. 게다가 “독사와 아시안이 지나가면 아시안을 먼저 죽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인을 멸시했다. 그는 “병동을 돌며 진행하는 회진 강의는 전문용어와 시연을 통해 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는데 문제는 교실에서 하는 강의였다”며 “교실 강의 일정이 정해지면 2주 전부터 ‘혹시 학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소화불량에 걸렸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털어놨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짊어진 책임감의 무게 또한 컸다. 그의 부인은 20대 초반 연애 시절부터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고자 하는 남편의 뜻을 지지했다. 유 교수가 우간다에서 결핵에 걸려 6주간 사경을 헤매고, HIV 감염자가 맞았던 주삿바늘에 찔려 한 달 넘게 격리되는 등 온갖 고비를 겪는 동안 꿋꿋이 곁을 지켰다. “아내는 저보다 한 살 위예요. 저희 누나 친구죠. 둘 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선지 마음이 잘 통했어요. 절 돕겠다고 결혼한 뒤 경북대 간호학과에 다시 입학해서 만삭의 몸으로 간호사 국가자격시험을 치렀어요. 너무나 고맙고 미안합니다.”

유 교수는 “우리 집 두 딸과 막내아들도 ‘아프리카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큰딸은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공부 중이고, 작은딸은 KOICA 인턴으로 일하며 탄자니아에서 파견 근무를 했습니다. 아들은 최근 해병대를 제대했어요.”

“존중받으려 하면 봉사 아냐”

유 교수가 23년간 마케레레대 의대에서 키운 제자는 2000여명에 달한다. “우간다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어느 나라를 가든 제자 한 명씩은 꼭 만나게 되더라고요.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세 번째가 ‘천하의 영재를 길러내는 것’이라죠. 봉사자로서의 꿈과 군자삼락의 즐거움을 모두 이루게 해 준 아프리카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유 교수는 봉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살다 보니 봉사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의 정의가 생겼어요. 하나는 그 일을 하면서 원래 받아야 할 봉급보다 4분의 1 이하로 받으면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나의 봉사를 받는 사람은 날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존중받으려는 욕심을 내면 봉사가 아니죠.”

그의 새로운 꿈은 내년에 에티오피아에서 KOICA 글로벌협력의사로 활동하는 것이다. “최종 합격 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몸과 영혼을 아프리카에 바칠 겁니다. 아산상 상금 1억원도 우간다 의료계를 위해 쓸 예정입니다.”

■KOICA 글로벌협력의사는
동남아·아프리카 등 17개國에 의료기술 전파
올해 22개 전공분야 10여명 뽑아


[人사이드 人터뷰] 유덕종 교수 "아프리카인 제자만 2000여명…우간다서 '군자삼락' 이뤘죠"
한국국제협력단(KOICA) 글로벌협력의사는 세계 개발도상국 병원과 의과대학에 한국 의료기술을 전파하고, 보건의료 향상을 돕기 위해 파견된 한국인 의료진이다. 1992년 KOICA 정부파견의사 제도가 그 시초며, 1년에 한 번 선발한다.

글로벌협력의사는 파견자 선정 과정이 까다롭고, 해외 진출을 꿈꾸는 국내 젊은 전문의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는 전문의와 한의사를 대상으로 가정의학과, 내과, 외과, 응급의학과, 한의학과 등 22개 전공분야에서 10여명을 뽑는다. 서류전형과 면접, 신체검사 등을 거친 합격자들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대 17개국에 희망 지역과 전공별 우선순위 등에 따라 배치된다. 활동 기간은 2년이며 평가 결과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

KOICA에선 글로벌협력의사에게 인건비와 체재비, 주거비와 항공료, 현장사업지원비, 가족동반수당(자녀 학비 제외) 등을 지원한다. 파견 전 국내 교육 2주, 파견 후 현지 교육 4주 등 6주간의 교육을 거친다.

KOICA 글로벌협력의사는 전문인력 봉사단원이기 때문에 일반 봉사단원보다 중도 포기자는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 지역의 특성상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위협과 전염병, 천재지변 노출 우려와 치안 불안 등으로 인한 신변 불안은 감수해야 한다. KOICA 측은 “지원자들의 사명감이 남다르다”며 “현장에서 봉사하는 것과 동시에 의사로서 새로운 배움을 얻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