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선 꼭 조문을 가고 싶은데, 일이 늦게 끝나고 장례식장이 워낙 멀어서…마음속으로 기도드릴 뿐이죠."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있는 '봉희설렁탕'은 은평구 일대에서 제법 이름난 맛집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찾은 음식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업소 안에는 김 전 대통령이 이곳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걸려 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23일 점심 무렵 찾은 이 업소는 평소와 비교해 크게 붐비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는 사실이 재삼 알려지자 이날 아침부터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다니신 집 아니냐. 어떻게 찾아가면 되나"라는 문의전화가 여러 통 걸려올 정도로 또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이 됐다.

이곳 주방에서 33년째 일한다는 주방장 김순봉(65·여)씨는 "내가 새댁 때부터 우리 식당에 찾아오셔서 종종 뵙곤 했다"며 "소탈하고 음식도 참 맛있게 드시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참 허전하다"고 말했다.

봉희설렁탕은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민주산악회 활동을 할 때부터 찾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등산을 가거나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오는 길이면 이곳을 꼭 들러 식당 한쪽에 있는 별실에서 식사했다고 한다.

"여기 오셔서는 꼭 설렁탕만 한 그릇 드시고 가셨는데, 설렁탕에 들어가는 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주방에서 갓 뽑은 면을 담아다 드리면 정말 맛있게 드셨고, 돌아가시는 길에는 주방에 들어와 꼭 악수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김 전 대통령은 이 식당을 잊지 않고 심심찮게 들러 식사를 했다.

취임하고서는 청와대 행사에 설렁탕 800여 그릇을 주문한 적도 있었고, 적어도 매달 2차례 정도는 설렁탕을 청와대로 배달시켰다고 한다.

김씨는 "청와대에 배달하러 가서 '봉희에서 왔다'고 하면 검문을 그냥 통과할 정도였다"며 "퇴임하시고도 아들 현철씨가 몇 차례 왔고, 대통령께서도 운전사를 시켜 한동안 계속 설렁탕을 배달해 드실 만큼 살뜰히 챙겨주셨다"고 말했다.

봉희설렁탕 측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뜻에서 식당 입구에 작은 조기(弔旗)를 내걸었다.

김 전 대통령이 좋아해 'YS 칼국숫집'으로 불린 서초구 양재동 소호정 본점에도 고인을 추억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김명희(36·여)씨는 "주말에 김 전 대통령 서거 뉴스도 있었고 날씨도 쌀쌀해 이곳으로 왔다"면서 "식사시간 내내 동료들과 함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김모(68)씨는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대구에서 상경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식당이라 일부러 찾아왔다"면서 "국내 민주화 운동에 큰 획을 그어 존경하고 있다.

서거는 안타깝지만 천수를 누리고 가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늘 국수 메뉴인 '안동국시'를 주문해 먹었으며, 재임 시절에도 석 달에 한 번 이상 들를 정도로 단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승강기가 없는 3층짜리 식당 3층에서 주로 식사를 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해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지자 2층을 이용하다 마지막 이곳을 찾은 2012년 9월27일에는 1층에서 국수를 먹었다.

소호정 대표 임동열(65) 회장은 "김 전 대통령은 아무리 식당 안에 손님이 많아도 저 먼 발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에게까지 직접 다가가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영부인 손명순 여사는 방문하실 때마다 직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과일이라도 사먹으라'고 용돈을 챙겨 주시는 등 뒤를 살뜰히 챙겼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18년 동안 일해 온 송기헌 전무(63)는 "가족과 수행원들을 데리고 정말 자주 오셨는데 마지막으로 오셨을 때는 손명순 여사, 현철씨 내외를 동반했고 걸음이 불편해 보였을 뿐 건강이 크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소호정은 'YS 칼국수 할머니'로 불린 고(故) 김남숙 여사가 1984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안동국시'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1990년대 중반 지금의 상호로 바뀌었다.

김 여사는 2008년 작고했고, 아들 임동열씨가 식당을 물려받았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설승은 기자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