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오가다 아이들에게 용돈도 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소식이 전해진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 앞은 취재진 20여명과 자택을 경비하는 의경 등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모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69년부터 지내온 2층 양옥 건물 자택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 옆에 걸린 '金永三'이라고 쓰인 문패로 이곳이 김 전 대통령의 자택임을 알 수 있었다.

한산한 상도동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 자택 바로 건너편 집에는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조기가 게양돼 있었다.

이곳 상도동 자택은 '상도동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정치와 민주화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성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동료 정치인들과 주요 현안을 논의할 때 상도동 자택을 이용했다.

1980년대 초 오랜 시간 가택연금을 당하다가 23일간의 단식투쟁을 시작한 곳도 상도동 자택이었다.

이따금 지나다니는 인근 주민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바라보고는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김모(70·여)씨는 "김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을 당했던 시절부터 상도동에 살았다"며 "당시에는 동네가 경찰로 가득 차 무척 삼엄해 다니기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대통령에 출마할 때마다 내 일처럼 나서서 '뽑아달라'고 주위에 권유하기도 했다"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새벽에 들었는데 무척 슬프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상도동 토박이라는 현기영(60)씨는 "자택 인근 경비가 무척 삼엄해 지나다니는 게 쉽지 않아 근처에 자주 가 본 적은 없다"면서도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이 지역에 8년째 살고 있다는 정승호(44·자영업)씨는 "고인께서 살았던 지역이라 덕분에 조용하고 치안도 좋았다"며 "동네에 오며 가며 보는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는 인간적인 모습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 자택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는 주인 오석구(67)씨가 침통한 표정으로 TV 뉴스 속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30년 넘게 이 가게를 운영한 오씨는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날 동네는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다"며 "너무 기쁜 마음에 직접 꽹과리를 들고 동네잔치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기억했다.

오씨는 "향년 88세로 돌아가셨는데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 100살도 넘게 살고 그러지 않느냐"며 "더 오래 사셔서 많은 일을 하셨어야 하는 분인데 애통할 뿐이다"라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이태희(77)씨는 "고집불통이라 할 정도로 뚝심과 집념이 대단하셨던 분"이라며 "최근 정치적인 실책이 두드러졌지만 하나회 청산이나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민주화를 위해 긴 시간 단식하는 등 업적도 재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자택 뒤편 노량진근린공원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운동하러 나온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김 전 대통령이 조깅을 즐겨 하던 곳이었다.

상도동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하동연(73)씨는 "민주화를 위해 공헌하고 대통령까지 하신 분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다"며 "대통령이 되고도 고향 같은 상도동에 특혜를 주는 등의 일은 일절 없는 공명정대하셨던 분"이라고 감회에 젖었다.

근린공원 안에 있는 4면 규모 배드민턴장에는 배드민턴 클럽 회원 20여명이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곳은 김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자주 들러 배드민턴을 하던 곳이었다.

20년째 이 배드민턴장에 다닌다는 B(70·여)씨는 "김 전 대통령이 아침 일찍 나와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을 자주 봤고 같이 배드민턴을 친 적도 있었다"며 "항상 과묵했지만 배드민턴을 할 때는 무척 즐거워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거동이 어려워지시고 나서는 한동안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며 "그래도 가끔 경호원을 대동하고 배드민턴장에 찾아와 구석에 앉아 회원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가기도 했다"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