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1조 갚아야 하는데…현정은 회장의 다음 카드는?
현대그룹은 요즘 뒤숭숭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각설이나 합병설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이다.

5년간 적자행진을 벌여 누적적자가 많다. 해운시황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채권단으로서도 무조건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한진해운과의 합병설, 현대자동차그룹으로의 매각설 등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그룹은 일단 자체자금 조달을 통해 현대상선의 유동성 문제를 책임지기로 방향을 정했다. 지난 11일 4500억원을 조달해 산업은행에서 빌린 2000억원을 갚았다. 조만간 3070억원어치의 영구전환사채(CB)를 발행할 예정이다. 5000억원의 유동성이 있으면 현대상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란 게 현대그룹의 계산이다.

하지만 시간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현대상선이 내년 상반기까지 갚아야 할 각종 채무는 1조원대다.

현대상선이 11일 조달한 자금 중 2500억원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이 스마트업유한회사를 통해 모집 주선을 맡았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만기 1년이 지난 뒤 차환이 안 되더라도 투자자들에게 금액을 보전해주는 내용의 대출확약을 했다”며 “만약 현대상선이 차환을 못하면 연 30%에 육박하는 높은 이자를 내도록 옵션을 걸었다”고 전했다.

해운시황 개선도 쉽지 않다. 각종 해운분석 기관은 이르면 2017년에나 해운시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운임은 바닥인데 비싼 값에 빌린 선박이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용선료로만 2조원 이상을 썼다. 올해와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채권단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는 등 추가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빨리 처리 방향을 결정하라는 압박이다. 현대증권 재매각을 추진하든지, 현대증권을 살리는 대신 현대상선을 포기하든지 결단을 내리라는 신호도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제3의 방안을 찾으라는 주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상선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나돌면서 영업부서가 큰 타격을 보고 있다. 매각설 등을 접한 일부 화주들이 계약을 미루자고 나서고 있어서다.

김보라 산업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