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원의 데스크 시각] 마션에서 본 '중국굴기'
영화 마션을 보고 뇌리에 오래 남은 것은 우주과학 분야에서의 중국 굴기(起)다. 특수효과, 그래픽 등 첨단 기법과 과학적 지식을 적절히 녹여 넣은 짜임새 있는 내용 전개 못지 않게 중국이 미국에 로켓을 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잠재력으로 평가하던 중국이 실력으로 세계를 압도하는 듯하다. 중국의 우주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했단 말인가.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속도를 뜯어 보면 중국 관객 동원을 위한 할리우드의 장삿속이라고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중국과학원의 ‘우주과학 선도전략 프로그램’ 등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2022년에는 유인우주정거장 건설을 마칠 계획이다. 또 2030년까지 케로신과 액체산소를 연료로 하는 460t급 엔진과 220t급 액체수소 엔진을 개발하기로 하는 등 대형 발사체 개념설계 연구를 진행 중이다.

科敎興國 전략 30년째 추진

물론 영화는 픽션이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에피소드가 담긴다. 남중국해 갈등이 아니더라도 우주 분야에서 미·중 간 협력은 상당기간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 자주개발을 고집하는 중국은 우주정거장(톈궁 1호)도 혼자 띄웠다. 2013년 무인탐사선(창어 3호)의 달착륙도 독자 기술로 이뤄낸 것이다.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기초 및 응용과학 핵심 기술개발 과정은 비밀에 부친다. 중국은 과학기술 수요가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으로 구축한 거대한 경제벨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겠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전략을 30여년째 추진해온 중국과 달리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달탐사 사업조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관련 예산 410억원 전액을 삭감당했고 내년 예산도 4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가 과학자들의 설득 덕에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다시 400억원으로 증액해 예결위로 넘긴 상태다. 근시안적인 과학기술 정책 탓에 우리나라와 최고 기술국인 미국 간 항공우주산업 기술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2008년 7.4년이던 기술 격차가 2014년 9.3년으로 확대됐다.

과제만 있고 과학은 없는 한국

우주개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국 눈앞의 연구 성과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모험을 꺼리는 사회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한다. 과제만 있고 과학은 없다는 얘기가 그냥 나왔겠는가. 보이지 않는 미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뚝심있게 정책을 밀어붙이는 리더십을 본 지 오래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이 130달러 수준이던 1966년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설립했다. 이어 1971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1976년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를 세웠다. 이들 연구기관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제조업 강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성공 확률만 따져 과학기술 예산을 배정하는 나라라면 꿈도 비전도 찾기 어렵다. 어려워도 뜻을 모으고 자원을 집중해 추진하는 게 의미있는 도전이다. 당장 빵을 나눠먹는 것보다 첨단 기술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과감한 과학기술 투자가 길게 보면 가장 효율적이고 파급력이 큰 복지정책일 수 있다.

이익원 < 부국장 겸 IT과학 디지털전략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