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미래 먹거리를 찾아라.’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공통 화두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신재생에너지 등의 차세대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기초 과학과 응용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도 양적인 측면에선 선진국 수준이다. 한국의 국가 R&D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1위다. 절대액수 면에서도 세계 6위 수준이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이나 실속 면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연구 성과의 사업화다. 연구개발된 것은 적지 않지만 사업화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연구 따로 사업화 따로’인 셈이다. R&D 결과를 사업화하는 실력은 세계 43위, 산업적 가치는 20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연구과제 선정 평가, 중간 평가, 사후 관리가 따로 이뤄지다 보니 책임 한계가 모호하다. 연구개발 컨트롤타워가 없어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체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연구 결과물이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존 R&D 패러다임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R&D 지원 못지않게 지원체계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해결책으로 ‘융합R&D’가 주목받고 있다.

‘UTA(Ultimate Techno Agency)기술사업화전문가단’은 ‘융합 R&D’를 실현하는 기관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소속된 UTA기술사업화전문가단(단장 김선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벤처캐피털리스트, 변리사, 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전문 멘토단을 구성하고 있다. 정부 R&D사업 중 ‘우수한 기초·원천 R&D성과’를 선정해 연구 집단 간 벽 허물기와 융합연구로 최적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전문가단 구성원은 각계 전문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모두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단장인 김선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드렉셀대에서 의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 한 게 아니다. 1990년대 초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의 심장박동이상유무를 자동 판독하는 ‘태아심음(心音) 감시장치(Fetal Monitoring Device)’를 개발했다. 2000년부터는 메디칼스탠다드라는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관련 업체를 창업해 운영 중이다. 그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단장과 오송첨복단지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장을 역임했다. 사업화 경험이 풍부하고 산학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전문가다.

전문가단에는 김희찬 서울대 의공학과 교수, 김인영 한양대 생체공학과 교수, 고석빈 알피니온 대표, 김진태 U2바이오 대표, 김영훈 IRM 사업개발 이사, 백승권 슈프리마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이 활동하고 있다.

김희찬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지원본부장이다. 바이오센서 및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분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김인영 한양대 교수는 보청기 및 심전도 측정기 분야의 권위자다. 인슐린 펌프, 혈당측정기, 심전도 측정기, 디지털 보청기 등의 신제품 개발을 돕기도 했다.

고석빈 알피니온 대표는 초음파 진단기, 김진태 유투바이오 대표는 병의원 검진용 솔루션 및 연계서비스 분야를 사업화하고 있다. 김영훈 사업개발 이사는 메디슨 사내벤처에서 독립한 기업인 IRM에서 사업전략 수립 및 상품 기획 등을 맡고 있고, 백승권 슈프리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기술벤처 전문 창업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단은 최근 핵심역량, 고객수요, 실행력, 사회적 기대 효과 등을 감안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클 수 있는 프로젝트를 4건 선정했다. 이들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이름은 ‘신산업 창조프로젝트’다. 4개 프로젝트 안에는 △포항공대의 ‘초민감의료진단사업단’ △광주과기원(GIST)의 ‘투명전극사업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친환경유화기술사업단’ △연세대의 ‘스마트혈액채취진단사업단’이 포함돼 있다.

포항공대팀은 광학현미경으로 마이크로RNA(리보핵산)를 분석해 암조기진단기법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사업화할 예정이다. 광주과기원팀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용 투명전극을 제품화할 예정이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용 투명전극은 접는 휴대폰, 거실 유리창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표준과학연구원팀은 초음파를 이용해 서로 다른 입자를 섞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연세대팀은 마이크로 랜싯(lancet)을 이용해 통증없이 혈액을 채취해 자가진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전문단은 4개 프로젝트에 자금지원, 사업화를 위한 자문, 네트워크 구축, 전문가들과의 교류 등을 지원한다. 특히 전문가단은 각 분야의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기술개발 생산 판매 수출 자금조달 등에 대해 종합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단장은 “이런 방식의 파격적인 지원은 처음 이뤄지는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관여하다 보니 연구 자율성이 얼마나 보장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프로젝트들이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국가 R&D 투자가 기술사업화라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