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판 ‘총몽(배틀 엔젤 알리타)’의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즈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줄로 요약 가능한 이 소식이 일본 만화 팬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일본 원작이 헐리우드로 넘어가 영화화 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는 일본 만화 팬들에게도, 헐리우드 영화 매니아들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일본 만화를 좋아한다면 일단 ’드래곤볼 애볼루션’이 생각날 것이다. 과연 이 영화의 어디를 보고 드래곤볼이라 불러야 할지 민망하기까지 하다. 이미 무덤 파고 들어가버린 망작에 대고 이 자리에서 비난을 하나 더 덧붙이는 것 마저 무의미할 지경이다. 다음으로 영화 팬의 입장에서 한국인 배우 정지훈이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 ‘스피드 레이서’ 역시 마뜩찮은 작품이다. 타츠노코 프로덕션이 제작한 원작에 바치는 오마쥬는 그럴 듯 했지만 정작 기본적인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라이트노벨 ‘All You Need Is Kill’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평단의 좋은 반응과 함께 한국에서는 굉장한 흥행을 기록하였지만 최종적인 세계 흥행 성적은 약간 아쉬운 지점에서 끝났다. 그런가 하면 98년판 롤랜드 에버리히 감독의 ‘고질라’는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정작 원작의 팬들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얻고 있는 중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판권만 미국에 팔린 채 10년이 넘게 제작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가다 2014년판 ‘고지라’처럼 의외의 성공작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일본 원작의 헐리웃 영화화는 여전히 성공확률이 낮고 위험성 높은 비지니스인 것이다.



이런 복마전에 제임스 카메론이 출사표를 던졌다. 어비스, 에일리언2, 터미네이터, 아바타와 같은 걸작 SF 영화들을 만들어낸 바 있는 그가 총몽의 영화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총몽은 ‘공각기동대’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일본의 유명 사이버펑크 만화다. 이 작품은 몸과 기억을 잃고 두뇌만 남은, 그리고 이후엔 그 두뇌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사이보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극한으로 발달한 로봇공학과 인터넷에 인체까지 침식당하는 사회에서 과연 인간을 정의하는 ‘고스트’는 무엇인가 하는 화두로 펼쳐지는 공각기동대와 유사한 주제가 총몽에서도 펼쳐진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토치로)는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기계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모토코는 원래의 기계몸을 잃고 인형사의 인격과 융합하지만 그래도 끝내 자신의 두뇌만은 건사하는데 반해 총몽의 주인공 갈리는 유일하게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두뇌조차 잃어버리고 컴퓨터로 작동하는 의사 인격으로 대체되어버린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자신으로서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더욱 강하게 갈리를 내리누른다.



카메론 감독은 이런 질문을 다루는데 매우 익숙한 거장이다. 어비스와 아바타의 외계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과 유사한 면을 보여주지만 다른 면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줌으로서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어비스의 해저 외계인들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하는 윤리적 인격의 완성체로 제시된다. 그런가 하면 아바타의 나비족은 인류가 우주에서 다시 만난 태고적의 자연친화적인, 그리고 ‘자연을 배척하는도록’ 서구화 되지 않은 -이는 어쩌면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일 수도 있겠다- 사회를 상징한다. 그리고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감정과 사랑을 상실한 사회의 결말이다. 스카이넷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유사가족 형태의 가족애를 보여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계인이나 인공지능과의 조우에 관한 이야기는 인류와 기원을 달리하는 존재와 만남으로써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가 보다 넓어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이버펑크 장르와는 물론 차이도 존재한다. 사이버펑크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대체되어 가는 과정이다. 팔다리가 기계라면? 사고 과정이 컴퓨터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오히려 반대로 컴퓨터가 사람의 몸과 생각을 흉내낸다면? 이렇게 인간성이 존재해야 할 자리에서 사람의 요소를 소거법으로 제거해 나가고 인격이 없어야 할 자리에는 인간성의 요소를 덧붙여 나간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핵심적 요소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이 접근법에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T-800은 인간의 모습을 배워나가 존 코너의 아버지(2편), 혹은 세라 코너의 아버지(5편)라는 역할을 획득하게 되고 반대로 존 코너는 기계가 되어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해버린다. 스카이넷은 인간 세상에 강림한 이질적 존재이지만 스카이넷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인간과 기계는 이렇게 서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변화해 나간다. 이러한 장대한 서사의 기초를 만들어낸 카메론 감독이라면 팬들이 갈리를 통해 보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그리고 총몽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전해져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카메론 감독이 만드는 사이버펑크 SF라면 분명히 원작의 팬들과 세계의 대중들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네이터, 어비스, 타이타닉, 아바타는 개봉 될 때마다 영화 촬영 기법과 특수효과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바가 있다. 그러니 SF 블록버스터의 필수요소인 ‘볼거리’ 역시 부족함이 없을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이 야심찬 영화화 계획엔 단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이걸 언제 만든다는 건가.



타이타닉 이후 카메론은 과작을 하는 감독이 되었다. 97년의 타이타닉 다음으로 2009년에 아바타가 나올 때까지 12년이 걸렸다. 이후로 몇 편이 될지 모를 아바타의 속편 스케줄은 빽히 잡혀 있는 와중에 과연 총몽을 찍을 시간은 있을 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며칠 전(16일) 감독이 로버트 로드리게스로 바뀌고 말았다. 카메론은 제작자로 촬영 현장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는 형태가 된 것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만드는 총몽의 이미지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농담으로) 그가 감독했던 좀비 스플래터 ‘플래닛 테러’처럼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그는 만화 원작의 ‘씬 시티’를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연출로 훌륭하게 완성시킨 바가 있기도 하다. 물론 ‘씬 시티’는 영화 연출 기법에 한 획을 긋는 명작임에 틀림 없지만 ‘아바타’에 비할 바는 아니기에 아바타에 근접했던 팬들의 기대가 ‘씬 시티’ 수준으로 내려간다면 김이 샐 법은 하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여전히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실망은 이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자로 참여해 슈퍼맨을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고뇌 가득한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히어로로 재탄생 시킨 ‘맨 오브 스틸’은 일정이 바쁜 유명 감독을 제작자로 참여시켜 그의 스타일을 충분히 담아낸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할만 하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이라는 SF 작품의 양대 프랜차이즈의 메가폰을 모두 거머쥔 J. J. 애이브럼스 감독이 결국 과욕을 버리고 스타트렉 차기작에서는 제작자로 비켜선 것도 이러한 성공 공식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장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실력이 검증된 감독이 현장을 담당하는 이런 체제는 팬들의 불안을 어느 정도는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작 계획도, 일정도 오리무중이었던 총몽의 영화화가 슬슬 제대로 된 윤곽을 갖춰 나가게 되었다는 점이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만들어지고 봐야 판권만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꼴은 면할 것이 아닌가.
장준도
한국경제TV 핫뉴스
ㆍ이산가족 상봉 이틀째, 수지닮은 북측 접대원 포착 “남남북녀 맞네”
ㆍ워런 버핏, 5억달러 투자 손실…"자존심 구기네"
ㆍ"영어", 하루 30분으로 미국인되는법!
ㆍ이파니 남편 서성민 "이파니 첫인상...진상녀였다"
ㆍ[연예 큐레이션] 한지일과 이파니 그리고 김사랑
ⓒ 한국경제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