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엔 카미노, 나를 찾는 길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북망산으로 갈 때까지 수많은 길을 걷는다. 이런 점에서 길은 필연이다.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 길을 갈 수는 없다.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을 통해 자신이 걸었던 길보다 걷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노래했다. 이런 점에서 길은 선택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갈림길에서 선택과 전진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길을 떠나며 인생을 돌아본다.

요즘은 도보여행이 대세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부터 작년 영화로 제작된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여정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휴일이면 제주 올레길, 서울도성길, 둘레길 등 곳곳의 도보길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페인에도 유명한 길이 있다. 제주올레길의 모델로도 알려진 ‘산티아고 길’이다. 2000년 전 유럽인에게 산티아고는 이베리아 반도 서쪽의 ‘땅끝 마을’이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사도 야고보가 이곳으로 와 복음을 전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순교했는데, 후일 제자들이 그 유해를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후 십수 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의 순례객들이 산티아고를 찾아 걸었고, 그렇게 다져진 길이 산티아고 길이다. 이 길은 특히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고 브라질의 유명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체험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 ‘순례자’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005년 9만명이던 순례객이 2014년 24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길 순례객은 인생 2막을 앞둔 은퇴자들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룬다. 종교적인 동기와 함께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인생의 숨을 고르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길은 아름다운 스페인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좋은 기회도 된다. 여러 나라 순례객들과 교류하며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닫는 것도 의미있다. 이뿐인가. 젊은이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글로벌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것도 값진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한국인 순례자들의 행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티아고의 길에서 마주치는 순례자들은 좋은 도보여행이 되라는 의미에서 “부엔 카미노(Buen camino=좋은 길)”라는 말을 서로 건넨다. 부디 우리 국민들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걷는 이 길이 온전한 나를 찾는 계기가 되고, 진정한 부엔 카미노로 남기를 바란다.

박희권 < 주스페인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