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줄면 값을 내려야 정상일 텐데 가격인하가 불가능한 품목이 있다. 바로 우유다.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국제 원유(原乳) 가격이 급락하고, 초저출산 여파로 우유 소비가 해마다 줄어도 원유 원가연동제에 묶여 우유값을 내릴 수 없어서다. 그 결과 유(乳)업계는 우유 재고가 최근 3년 새 2~3배씩 급증했고, 흰우유 부문의 순익이 급감하거나 아예 적자까지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형편이라고 한다. 해외보다 2배 이상 비싼 우유를 사 마셔야 하는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만이다.

원가연동제는 정부가 해마다 반복되는 낙농가와 우유업체 간 원유가격 인상 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2013년 도입한 제도다. 전년도 원유가격에 생산비 증감분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생산비와 물가는 매년 오르게 마련이어서 원유가격 인하 가능성은 애초에 배제됐다. 그 결과 수요가 줄든 말든 인상 또는 동결만 가능한 기형적인 제도가 되고 말았다. 올해도 우유 소비가 줄고 재고가 쌓여도 유업계의 원유 구매가격은 L당 1088원으로 동결됐을 뿐이다. 우유가 안 팔려도 원유를 쿼터대로 사줘야 하는 유업계로선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시장원리가 배제된 가격결정 방식은 보조금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원가연동제는 5000여 낙농가에 유업계와 소비자들이 사실상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국내외 가격차가 벌어진 틈을 타고 코스트코가 값싼 외국산 우유를 수입할 태세여서 설상가상이다. 이대로 가면 국내 우유산업이 공멸할 것이란 우려가 과장이 아니다. 쌀시장보다도 더 왜곡된 우유시장이다. 언제까지 이런 억지를 계속 밀고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