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좌파' 대표 선택한 영국 노동당
‘극좌파’ 제러미 코빈(66·사진)이 영국 노동당의 새로운 대표가 됐다. 중도주의 노선을 배격하고 전통적인 좌파 주장을 펼치는 코빈이 당수가 됨에 따라 노동당 내부 갈등이 깊어질 전망이다.

노동당은 12일(현지시간) 차기 대표 선거 결과 코빈 후보가 59.5%를 얻어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코빈 신임 대표는 노동당 내부에서 강성 좌파로 분류된다. 중도세력을 끌어안기 위해 기존 좌파의 공약을 과감히 버린 ‘신노동당’ 노선보다 급진적이다.

그는 보수당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정긴축을 거부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보수당 정부의 공공부문 축소와 복지지출 축소를 막겠다고 했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선 긴축이 아니라 기업의 탈세 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도 국유화, 법인세 인상을 통한 대학수업료 전액 면제 등도 그의 주장이다.

코빈은 노동당 내에서 줄곧 ‘아웃사이더’였다. 당내 주류는 신노동당 노선을 주장하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지지자들이다. 그는 500여차례에 걸쳐 당과 지도부의 의견에 어긋나게 투표권을 행사했다. 노동당 대표 후보 등록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예상외로 코빈은 이후 이어진 설문조사에서 줄곧 압도적 1위를 지켰고, 결국 대표가 됐다.

노동당이 중도노선을 표방하고도 지난 5월 총선거에서 보수당에 참패한 것이 코빈 승리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웃 아저씨 같은 친근함도 그가 급부상한 이유다. 그는 영국 남부 윌트셔에서 전기기사인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차림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코빈 대표 앞에는 노동당 통합이란 과제가 놓여 있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융합하는 ‘제3의 길’을 주장해온 블레어 전 총리는 “코빈이 대표가 되면 노동당이 절멸할 것”이라며 코빈 당선을 경계했다. 코빈 당선 직후 노동당 중진 의원 일부는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코빈의 압도적인 승리가 노동당의 ‘내전’을 부르고 있다”며 “코빈이 노동당의 상처를 꿰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