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국기업] 생존 위해 세계 1위 사업도 판다…GE·듀폰도 '사업재편 몸부림'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지상파 방송국 NBC와 영화사 유니버설, 그리고 금융 자회사인 GE캐피털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애초 그의 ‘경영 일정’에 없던 결정이었다. 그는 세계적 자랑거리인 이들 회사를 애지중지했다. 문제는 더딘 성장과 리스크 노출이었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산업재에서 금융, 미디어에 이르는 GE의 문어발식 사업 구조를 좋아하지 않았다.

숨가쁜 사업재편

이멜트 회장이 ‘선택과 집중’을 다시 화두로 삼은 것은 2009년 즈음이었다. 역사적 기업 인수합병(M&A)은 그해 7월 초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도시 선밸리에서 시작됐다. 뉴욕의 작은 미디어 전문 투자은행(IB) 앨런앤드컴퍼니가 매년 여는 ‘선밸리 미디어 콘퍼런스’에서였다.

미디어업계 거물들이 모두 모인 이 행사에서 이멜트 회장은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랄프 로버츠 공동창업자를 만났다. JP모간체이스의 제임스 리 주니어 부회장이 주선한 비밀 회동이었다. 이멜트 회장이 로버츠 회장에게 물었다. “정말 이 거래를 원하십니까?”

GE의 사업재편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합작 파트너인 프랑스 비방디가 보유한 NBC 유니버설 지분 20%를 인수해 100% 자회사로 만든 뒤 51%를 컴캐스트에 팔았다. 2013년에는 나머지 49%도 넘겼다.

이후 투자자들의 관심은 GE캐피털로 옮겨갔다. 금융 자회사가 산업재 회사인 GE의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 주주들의 오랜 불만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런 불만을 증폭시켰다. 미디어 사업을 매각하자 매출과 순이익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것도 걱정거리였다.

결국 GE는 올해 초 모든 금융사업을 2년 안에 팔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오피스 빌딩과 상업용 부동산을 웰스파고은행과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265억달러에 팔았고, 앞으로 상업용 대출 자산 등을 팔아 약 167억달러의 현금을 추가로 손에 쥔다는 계획이다. 대신 GE는 프랑스 알스톰의 전력사업 부문을 124억유로에 인수하기로 지난해 6월 합의하고 유럽 경쟁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벼랑 끝 한국기업] 생존 위해 세계 1위 사업도 판다…GE·듀폰도 '사업재편 몸부림'
사명까지 바꾸는 승부수

GE의 사업재편은 흑자를 내고 있는 사업부를 팔았다는 점에서 ‘선제적’이라고 평가된다. 정부나 은행 주도가 아닌 자본시장의 요구에 따라 ‘빅딜’이 이뤄졌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부문 대표는 “시장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이사회와 경영진은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재편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은 회사가 어려워질 대로 어려워져 떠밀려 매각이 이뤄지는 국내 업계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회사를 상징하는 제품마저 버리고 사업구조를 완전히 탈바꿈하는 사례도 많다. 미국 다우케미컬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빨래세제 원료인 염소, 1968년 아폴로8호의 지구 귀환을 가능케 했던 에폭시 수지 등 회사의 역사와 함께한 제품들을 최근 몇 년 새 과감히 팔아치웠다. 앤들 레버리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용 화학제품 사업을 모두 매각한 후에는 사명에서 ‘케미컬’을 아예 빼버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다우케미컬은 2009년부터 범용 제품 사업을 팔기 시작해 현재까지 100억달러 넘는 현금을 확보했다. 이 돈으로 농업 생명공학, 특수 화학제품 사업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기업의 변신은 ‘무죄’

미국 화학회사 듀폰의 앨런 컬먼 CEO는 스스로를 ‘최고변화책임자(transformer-in-chief)’라고 부른다. 세계 1위 화학회사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농업과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듀폰은 지난 7월 회사 매출의 25%를 차지하던 기능성 화학제품 사업부를 분사했다. 이 사업부에서 만드는 이산화티타늄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제품이다. 앞서 2013년에는 자동차 도료 사업부를 사모펀드 칼라일에 49억달러에 팔기도 했다. 대신 2011년 인수한 유럽 효소·비료업체 다니스코 등 농업 및 바이오 기업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성장 정체를 겪던 3M은 2006년 ‘접착(attach)’이라는 단어를 사업재편의 키워드로 삼았다. 낚시용품 등 ‘접착’과 관련 없는 사업은 팔고 항공기 접착체, 치아 교정용 접착체 등 붙이는 것과 관련 있는 기업들을 인수했다. 2005년 약 4조원대에 머물던 영업이익은 2년 뒤 6조원을 돌파했다.

■ 54조371억원

제너럴일렉트릭(GE)이 2007년부터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매각한 계열사들의 가치. GE는 GE플라스틱을 사우디아라비아 SABIC에 116억달러에 매각한 뒤, NBC 유니버설(300억달러) 등을 과감하게 팔았다.

유창재/김태호 기자 y 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