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노동개혁,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청년 고용절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고작 한 달이다. 2017년까지 20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진작책인데 반응이 영 딴판이다. 대책이 오히려 더 심각한 고용절벽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기업들이야 분위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약점을 잡힌 기업일수록 더 분주하다. 민간기업이고 공기업이고 앞다퉈 채용 계획을 쏟아낸다. 줄어들던 채용이 갑자기 늘어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간단하다. 몇 년 치 고용계획을 앞당겨 내놓고 있어서다. 2017년 이후 고용절벽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라고 모르겠는가. 안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답답할 따름이다.

정부의 고용 대책이라는 것이 매사 이 모양이다. 그 전이라고 달랐겠는가. 지난해 일자리 사업에 예산 1조3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고용 창출 및 유지 효과가 낮은 직접 일자리 비중이 31.7%나 됐고 이 가운데 1년 넘게 유지한 고용은 15.2%에 불과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파악한 결과다.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고, 일자리는 일자리대로 생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식으로는 고용절벽을 피할 수 없다.

고용은 기업이 한다. 장사가 안되면 채용을 강요해도 시늉만 하는 곳이 기업이지만 장사가 잘 되면 뽑지 말라고 해도 채용에 나서는 곳이 기업이다. 노동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다.

문제는 정부다. 생각해보라. 박근혜 정부가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노동시장에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진 정년 연장은 고용절벽의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노동계에 줄 것 다 주고 이제 와 임금피크제를 받아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저임금을 이렇게 가파르게 올린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통상임금 문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모두가 노동시장을 경직화한 정책들이다. 그런 정부가 이제 와서 기업들에 고용을 강제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차피 답은 개혁이다. 물론 정권 후반기의 개혁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대상이 정치세력화한 노동계다. 그래도 정부가 진심으로 노동개혁에 성공하고 싶다면 정공법을 동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보호받고 있는 정규직에 손을 대야 한다. 기득권을 깨는 일이다. 한 번 채용하면 회사가 정년까지 책임지는 지금의 시스템은 더 이상 사회 통념에도 맞지 않는다. 저성과자의 과감한 퇴출과 새로운 피의 수혈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해고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비정규직도 과보호되고 있다. 2년 근무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 비정규직보호법은 오히려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폐기해야 한다. 32개 업종에만 허용한 파견근로도 제조업 전반으로 허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는 폐지돼야 한다. 노사정위는 외환위기 시절이던 1기 때를 제외하고는 제 기능을 발휘한 적이 없다. 노·사·정 어디고 이 위원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은 없다. 이제 정부가 노동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근로자의 10%도 안 되는, 그것도 정규직 근로자만을 대변하는 소수 이익단체일 뿐이다. 노동개혁을 하면서 노동자와 사용자 등 이해당사자에게 결정권을 줘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충고다.

노동시장이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경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기업들은 해외로 뛰쳐나가고 외국 기업은 한국에 투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정부가 기업들에 채용을 늘리라고 다그칠 일이 아니다. 기업이 자발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어야 자연스럽게 고용이 일어난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수단은 법과 원칙이다.

골든타임은 이미 놓쳤다. 이번에도 노동개혁에 실패한다면 고용절벽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