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막대한 적자를 낸 조선 3사를 포함한 17개 상장사에 대해 올 3분기 중 회계감사인을 교체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형식상으로는 해당 기업의 자율 교체지만, 새로운 감사인을 지정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회계감리에 나설 것이라고 하니 사실상 강제 교체와 다름없다.

금융당국은 이들 상장사가 최근 대규모 잠재부실을 털어낸 데 따라 실적이 완화된 것에 주목해 이런 조치를 강구하는 모양이다. 새로운 CEO가 취임한 이후 전임자 시절에 누적된 잠재부실을 단번에 털어내는 이른바 ‘빅배스(big bath)’가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빅배스’를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임 CEO가 자신의 추후 성과를 돋보이게 할 의도로 미리 전임자의 경영성과를 더 나쁜 것으로 만들려는 유혹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국이 이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빅배스’는 비록 회계적 논란은 있어도 분식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를 새삼 문제 삼는다면 그동안 이를 용인해왔던 금융당국의 감리가 더 문제다. 대우조선에서 보듯 미청구공사액은 매출채권과 같이 자산이지만 위험성은 훨씬 더 큰데도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의무가 없다. 더구나 기업이 회계연도 중에 감사인을 바꾸면 ‘뭔가 심각한 회계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퍼질 게 뻔하다. 해당 업체들의 평판 리스크는 물론이고, 한국 기업 전체의 회계수치에 대한 국제 신뢰도에도 손상을 가져온다. 금융당국이 국회 등의 추궁을 의식해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이 대규모 잠재부실을 터는 것은 자율적 구조조정이라는 측면도 있다. 그나마 CEO가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잠재적 리스크를 털어내고 가벼워져야 기업의 계속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안 돼서 문제이지 과도해서 문제가 생기는 단계도 아니다. 정부도 금융회사도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아 ‘좀비기업’ 등 문제가 생기는 판이다. 기업의 부실정리를 탓할 수 없다. 잠재부실을 덮어두라는 식이라면 나중에 그 책임은 누가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