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맨주먹으로 재계 5위 기업을 일궈낸 ‘신격호 신화’마저 빛이 바래가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93)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된 이후 롯데 계열사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실적 악화 조짐에 신용평가사들은 등급 하향을 검토 중이다. 비서에게까지 존댓말을 쓰는 ‘겸손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알려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0)의 이미지도 큰 손상을 입었다.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형제간 싸움에 롯데를 넘어 기업 전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커지고 있다.

극단적인 사태를 부른 진앙은 신 총괄회장 본인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남다른 그의 카리스마가 독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다. 성공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역설적으로 신 총괄회장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상 성공했다는 자부심과 카리스마가 주변에 독선으로 비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차남과 장남 사이를 오가며 불과 몇 개월 새 후계구도를 뒤흔든 것도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형제를 차례로 내치는 계기가 된 투자실패 사례들은 경영상 용인되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실패를 몰랐던 신 총괄회장의 엄격한 기준에 미달한 탓에 노여움을 샀고, 이는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도 ‘신격호 리스크’가 거론되는 배경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경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금도 매일 계열사들의 보고를 받고 있지만, 흐릿해진 판단력 탓에 엉뚱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아 늘 조마조마하다는 게 롯데 임직원들의 얘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 2세들이 환갑을 넘긴 만큼 진작 후계구도를 정리했어야 하는데 이를 미룬 것이 분쟁의 큰 씨앗이 됐다”며 “위대한 기업가의 이름이 리스크로 거론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