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도 배움에서 싹튼다…첫 단추는 '생각의 교감'
일본에서는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든 기업에 ‘데밍상’을 준다. 데밍상은 ‘산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릴 정도로 큰 상이라 일본 기업들은 모두 이 상을 받기를 꿈꾼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 제정한 상에 ‘데밍(Deming)’이라는 미국인 이름이 붙어있을까? 일본이 데밍의 ‘통계적 품질 관리 기법(TQM)’을 배워 일본 산업을 부흥시켜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움에 열정을 쏟았던 일본 기업들이 점차 미국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0년대 미국의 경쟁 업체들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이 유서 깊은 록펠러 빌딩, 콜롬비아 영화사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사들이자 미국은 공포에 질렸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제2의 진주만 폭격이 시작됐다’는 사설이 실렸을 정도였다. 비로소 현실을 깨달은 미국 기업들이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6시그마 방법론’이다. 미국에서 개발했지만, 사실 ‘6시그마 방법론’은 도요타시스템에 통계적 분석 방법을 접목한 것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듯 과거의 혁신 활동은 배움, 즉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뜸으로써 이뤄졌다.

그런데 ‘창조’는 어떨까. 창조도 배울 수 있을까. 창조하면 떠오르는 예술가, 그중 ‘인상파’ 화가들을 예로 들어보자. 인상파는 기득권 세력인 고전파를 이기고 새롭게 미술계를 석권했다. 두 유파의 차이는 고전파가 사물에는 고유한 색이 있다고 생각한 반면, 인상파는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모네는 ‘수련 연작’ ‘루앙 성당 연작’을 아침, 점심, 저녁에 그려 인상파가 옳음을 증명했다. 그러면 인상파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들은 ‘광학이론’을 배웠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무의식 이론을 빌어 자신들의 그림을 합리화했다.

발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발명가 알트슐러는 20만건의 특허를 분석해 창조를 밝혀냈고 이를 ‘트리즈’라는 이름의 방법론으로 정리했다. 즉 창조에도 원리와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예술가, 발명가 역시 배워야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다.

최근 이를 뇌과학 측면에서 증명한 학자가 있다.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그의 저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 The natural history of innovation)’에서 창조는 교감을 통해 발생한다고 밝혔다. 외부에서 지적 자극을 받으면 뇌는 뉴런 간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킨다. 또 이 새로운 생각은 외부 세계의 새로운 생각들과 융합되면서 증폭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업의 문제해결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는 ‘브레인스토밍’이 대표적이다. 일정한 주제에 관해 회의 형식을 채택하고, 구성원의 자유발언을 통한 아이디어 제시를 요구해 발상을 찾아내는 방법인 브레인스토밍의 핵심요소는 제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의 교감이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불황의 늪에서도 20년 연속 연 10% 이상 성장한 47개 기업의 공통점을 조사한 결과 그중 34개 기업이 독자적인 창조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결국 새로운 생각을 ‘촉발’시키고 ‘융합’시키는 두 과정을 결합한 것이다.

많은 기업이 ‘창조경영’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 프로세스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창조경영’을 하고 싶다면, 먼저 ‘지식경영’을 하면 된다. 책, 강의, 관찰 등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하고, 그다음 새롭게 배운 지식을 우리 회사에 어떻게 응용할까를 집단적으로 고민하게 하면 된다.

윤정원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