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에게 벙커샷을 배웠다는 김민규는 “모래를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벙커샷이 의외로 쉽다”고 했다. 볼 밑에 있는 만원짜리 한 장을 떠낸다는 생각으로 모래를 얇게 떠내는 게 포인트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최경주에게 벙커샷을 배웠다는 김민규는 “모래를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벙커샷이 의외로 쉽다”고 했다. 볼 밑에 있는 만원짜리 한 장을 떠낸다는 생각으로 모래를 얇게 떠내는 게 포인트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저, 챔피언티에서 치면 안 될까요.”

지난 14일 오후 경기 용인시 88CC. 가느다랗게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화이트티에 올라가 몸을 풀려던 참에 날아온 기습 제안이었다. 챔피언티는 화이트티보다 전장이 500m 긴 프로의 영역. 비거리가 짧은 아마추어에겐 로망이자 금기의 영역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고민하는 걸 눈치챘는지 그가 한마디 했다. “저 곧 대회 나가야 하거든요.”

‘천재 골퍼’ 김민규(14)와의 ‘맞짱’은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작됐다. 88CC가 꿈나무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한 그는 지난달 국내 남자 골프 사상 최연소(14년3개월)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대학생을 포함한 전국 아마추어 최고수 28명이 겨룬 선발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4위까지가 국가대표, 그 밑이 상비군이다.

“헤드 무게보다 리듬에 신경써야”

어~랏! 챔피언 티에서 치자고? '열네 살 스윙머신'에 큰코 다치다
챔피언티에서 바라본 풍경은 달랐다. 화이트티에선 안 보이던 벙커와 러프, 해저드가 눈에 들어왔다. 타수를 잡아먹는 적들이다. 샷이 달라진 건 물론이다. 드라이버를 220~230m 날려도 세컨드 샷에서 4번이나 5번 아이언을 잡는 게 다반사였다. 전반에만 보기 네 개를 범했다. 손에 익지 않은 롱아이언을 쓰다보니 2온이 쉽지 않았다. 이 고통을 그나마 잊게 해준 게 그의 ‘무결점 샷’이다.

최경주(45·SK텔레콤)와 조던 스피스(22·미국)를 좋아한다는 그의 샷은 그 ‘우상’들보다 더 완벽해 보였다. 다운스윙과 임팩트, 폴로스루 과정에서 어깨 회전은 물 흐르듯 했다. 왼쪽 다리부터 회전을 시작해 왼쪽 다리로 회전을 완성했다. 피니시에서 허리와 등은 활처럼 휘었다.

이보다 눈에 띈 게 ‘루틴’이다. 그는 18홀 내내 한 번도 루틴을 어기지 않았다. 연습 스윙-목표 설정-어드레스-왜글(손목 풀기)-목표 재확인-스윙. 이 순서를 기계처럼 지켰다. 백스윙 때 오른쪽 무릎을 단단히 고정했고, 머리와 척추 각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14번의 드라이버샷 중 11번을 페어웨이에 올렸다. 정확도 79%. 그린 적중률은 100%에 달했다. “세컨드 샷을 하기 좋은 곳으로 공을 보내려면 가끔 러프에 티샷을 떨굴 필요도 있어요.” 어린 나이지만 코스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립을 견고하게 잡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헤드 무게를 의식하진 않아요. 공을 때리든 밀든 똑바로 나가면 상관 없잖아요. 더 중요한 게 리듬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맘속으로 꼭 하나~둘을 세요.”

“비결? 연습하니까 되던데…”

어~랏! 챔피언 티에서 치자고? '열네 살 스윙머신'에 큰코 다치다
그 스윙이 독학으로 만들어진 건 경이였다. 그는 일곱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때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만큼 형편이 어려워 중고 아이언을 짧게 잘라 휘둘렀다. “아마추어 싱글골퍼인 아빠가 가르쳐주는 대로 잡초밭을 파거나 빈스윙을 했어요.”

하루 20시간 넘게 연습에만 몰두한 적도 많다. 하루 3000번씩 휘두르고 또 휘둘렀더니 어느 날 신기하게 어깨와 팔, 손가락에 들어갔던 힘이 쓱 빠지더란다. 연습장에 갈 돈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삼은 빈스윙이 되레 실력의 밑천이 된 것이다.

고향(광주광역시 광천동) 근처 천변 모래밭은 ‘쫄깃한’ 손맛을 알게 해준 최고의 연습장이었다. 그는 “모래를 떠내는 연습을 했더니 뒤땅도 없어지고, 벙커샷도 자신있게 됐다”며 “그때 임팩트가 뭔지 알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땐 계곡에 텐트를 쳐놓고 개울물을 떠내는 ‘물장구’샷 연습만 두 달이나 했다. 손목 힘이 몰라보게 강해졌다.

실력이 일취월장한 건 지난해 88CC 골프 꿈나무 장학생으로 뽑혀 연습을 맘껏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도 마땅한 거처가 없다. 국가대표 합숙훈련이 끝난 이후가 그래서 걱정이다.

전반을 1언더파로 마친 그는 “창피하다”며 후반부터 샷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드라이버가 270m를 넘나들었다. 파5는 모두 2온. 그는 후반 보기 없이 버디만 두 개 잡아냈다. 거리에 밀리지 않기 위해 용을 쓰던 기자는 후반 첫 홀부터 6번홀까지 트리플 보기 1개, 더블 보기 1개, 보기 4개를 쏟아내며 무너졌다. 그의 말대로 ‘꼭 지켜야 하는 리듬’을 잃었던 탓이다. 그는 3언더파를 치고도 입맛을 다셨다. 69 대 84.

헤어지기 전 물어봤다. “혹시 일본말로 입(口)을 뜻하는 건데 ‘구찌’를 아니.” 경기 도중 상대방의 심리를 뒤흔들기 위해 늘어놓는 이런 저런 말과 행동을 뜻하는 골프 속어다. 1 대 1 매치플레이에서도 강자로 통하는 그가 구찌를 안다면 고도의 심리전에도 능하다는 얘기다.

그가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5학년 형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다운스윙할 때 숨 내쉬느냐, 들이쉬느냐고요. 스윙할 때마다 자꾸 그 생각이 떠올라서 그날 대회 완전히 망쳤어요. 비거리를 갑자기 내는 것도 구찌 아닌가요. 하하.”

■ 김민규 선수는

▶2001년 3월24일 광주 출생 ▶경기도 안양 신성중 2년 ▶신체:170㎝/79㎏ ▶골프입문:7세 ▶최저타수:66타(6언더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240m ▶자신있는 샷:벙커샷 ▶주요 성적:2015년 4월 르꼬끄배 우승, 2015년 3월 요넥스컵 우승, 2014년 일송배 2위, 2013년 초등골프연맹배 우승, 2011년 박세리배 우승

장소협찬=88컨트리 클럽

용인=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