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국가경쟁력이다] "영어 제2공용어화 본질은 서민 위한 것… 야당 반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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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가 복거일 선생·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대담
사회=차병석 경제부장
강남 초등생 25% 영어유치원 출신…강북은 1% 그쳐
영어따른 소득차 月60만원…'잉글리시 디바이드' 심각
영어 잘하면 세계서 일자리…청년실업문제 쉽게 해결
공용어로 쓰면 소득 1만달러 늘고 양극화 해소 가능
한국어 버리자는 게 아니라 언어 하나 더 쓰자는 것
해외에 고유문화 더 잘 알릴 수 있어…정체성 안 잃어
사회=차병석 경제부장
강남 초등생 25% 영어유치원 출신…강북은 1% 그쳐
영어따른 소득차 月60만원…'잉글리시 디바이드' 심각
영어 잘하면 세계서 일자리…청년실업문제 쉽게 해결
공용어로 쓰면 소득 1만달러 늘고 양극화 해소 가능
한국어 버리자는 게 아니라 언어 하나 더 쓰자는 것
해외에 고유문화 더 잘 알릴 수 있어…정체성 안 잃어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한국 경제의 난관을 ‘영어 제2 공용어화’로 뛰어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어 사용능력이 국가와 개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모든 국민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익힐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영어의 제2 공용어화 논의에 불을 붙인 이는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선생과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이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차병석 경제부장의 사회로 대담을 하고 “한국어와 함께 영어를 국민이 어릴 때부터 배운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는 올라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소득 2만달러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같은 강소국처럼 영어 사용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이 영어 제2 공용어화에 의기투합한 것은 한국 경제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기존 해법으론 풀기 어렵다는 위기감과 절박감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 25%가 영어유치원 출신이라는데 강북은 이 비율이 1%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영어교육을 사교육 등에 맡겨두면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소득격차가 생기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 선생은 “세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정보처리도구인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배우겠다는 데 국가가 왜 막느냐”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 경제부장=한국 경제의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계기가 절실합니다. 영어의 제2 공용어화로 그런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박인구 부회장=물론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만 팔리는 시대가 됐습니다. 1등 제품을 만드는 1등 국민이 돼야 살아남는다는 얘기지요. 한국을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전 세계 인터넷 정보의 90%가 영어로 돼 있습니다. 채팅이나 검색을 영어로 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요. 영어를 못해서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복거일 선생=같은 생각입니다.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개인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막는 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미 세계가 하나의 정보처리체계가 된 상황에서 그 공통어인 영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박 부회장=영어에 능통하면 정보 습득과 소통이 빨라집니다. 한국인은 교육수준도 높고 우수합니다. 제도적으로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해주면 훨씬 발전할 거예요. 청년 실업문제도 해결될 겁니다. 영어만 잘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라도 취직할 수 있을 테니까요.
▷복 선생=언어는 본질적으로 정보처리를 위한 수단입니다. 영어 수학 컴퓨터언어가 다 중요한 언어인데 영어만은 학원에서 배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결론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차 부장=영어의 중요성은 공감합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0년대 말에도 영어 제2 공용어화 주장이 부상했다가 사그라졌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박 부회장=영어 공용어화는 민감한 주제입니다. 당시 반대 목소리가 크다보니 국가에서 이를 극복하고 추진할 의지를 상실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민의 언어구사 능력에 한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작은 나라일수록 그렇지요.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싱가포르 홍콩 등이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삼아 성공한 나라들이에요.
▷복 선생=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공용어들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한문이 국제어 역할을 했고, 고대 서양에선 아람어와 그리스 로마어 등이 그랬죠. 지금은 누가 뭐래도 영어가 공용어 아닌가요.
▷박 부회장=분명한 것은 한국어는 지금처럼 국어로 두자는 겁니다. 영어는 제2 공용어가 되는 거죠. 물론 지금도 국민이 영어를 알아서 배웁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두지 말자는 겁니다. 비(非)도덕적이거든요.
▷차 부장=왜 비도덕적인가요.
▷박 부회장=개인에게 맡기면 부유한 집의 자녀만 영어를 잘할 수 있으니까요. 이들은 해외로 어학연수도 가고 교환학생으로도 나갑니다. 그러면 영어가 부(富)의 대물림을 낳는 ‘잉글리시 디바이드’가 심해집니다. 영어 실력에 따른 소득격차가 월 60만원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복 선생=영어 공용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억지를 씁니다. ‘영어를 제2 공용어화하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지요.
▷박 부회장=사실 영어 제2 공용어화는 서민·중산층을 위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곳에서 치고 나와야 할 아젠다입니다. 근데 그분들이 더 반대를 해요. 안타까운 일이죠.
▷차 부장=영어를 제2 공용어화한다면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영어를 쓰도록 해야 할까요.
▷박 부회장=영어는 한국어와 함께 국가 공식 언어가 되겠지요. 관공서와 학교에서 문서를 두 가지 양식으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미디어인데 영어를 쓰는 방송이 몇 개 생겨야겠지요. 그래야 국민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고 쉽게 배울 테니까요.
▷복 선생=그 점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는 복수의 언어를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언어를 뇌리에 각인할 수 있는 것은 11세까지예요. 이때까지는 2~3개 언어를 부작용 없이 동시에 배울 수 있어요.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지 않으면서요.
▷박 부회장=한국인의 지능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뜻을 못 펴는 안타까운 현실을 수없이 봤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한국에서 싸이월드가 먼저 나왔지만 세계 시장은 페이스북이 휩쓸었어요. 싸이월드에 영어 서비스가 없었던 게 결정적 패인이지요.
▷차 부장=영어가 공용어화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복 선생=정체성은 과거의 유산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를 향하는 시선으로 결정됩니다.
▷박 부회장=세종대왕 이전에 한글이 없을 때도 우리 문화를 지켰습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 되면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복 선생=영어 때문에 언어생활이 빈곤해질 것이란 반론도 말이 안 됩니다. 국민이 어릴 때부터 사자성어를 배우는데, 모두 중국과 관련된 거죠. 얼마나 빈곤합니까. 셰익스피어 같은 또 다른 문화를 알면 안 되는 걸까요. 외교를 봐도 그렇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역사 논쟁에서 우리가 밀리는데, 이건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차 부장=결국 교육이 바뀌어야겠군요. 국어학계의 반발이 클 것 같습니다만.
▷복 선생=영어 공용어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엔 한글학자보다 영어 교수와 교사들이 더 많습니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하면 기득권이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박 부회장=산업현장에서 보면 영어 공용화는 시급합니다. 중소기업 공장에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데 아무도 영어 매뉴얼을 해석하지 못해요. 고장이 나면 해외에서 사람을 불러야 하지요. 그게 우리 산업경쟁력의 현주소입니다.
▷차 부장=지금도 상당수 한국인이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복 선생=발음은 안 좋아도 돼요. 사투리 좀 쓰면 어떻습니까.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됩니다. 계약이나 중요한 의사소통은 대부분 글로 이뤄지니까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 중요한 건 화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양이죠. 개인적으로는 16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외국인을 만났어요. 그때 상대방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조금 알고 가서 먼저 얘기를 꺼내면 모두 감탄하고 상담이 술술 풀려요. 그 나라 민요까지 한 곡 부르면 모든 계약이 성사되지요.(웃음)
▷박 부회장=영어 공용어화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겁니다.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평론가 복거일 선생은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로 활동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은행과 무역회사 등에서 근무하다 1987년 마흔을 넘긴 나이에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소설과 사회비평 등 40여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란 책에서 영어 공용어화라는 화두를 던져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2012년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6권짜리 장편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를 25년 만에 완간하기도 했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은
20년간 옛 상공부에서 근무하다가 1997년 동원그룹으로 옮긴 경영자. 고교 교사로 일하다가 뒤늦게 행정고시(21회)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영어에 관한 각별한 관심은 1984년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으로 나갔을 때 시작됐다.해외생활 9년간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영어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고 한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경제신문 칼럼 등을 통해 영어 제2 공용어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영어의 제2 공용어화 논의에 불을 붙인 이는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선생과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이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차병석 경제부장의 사회로 대담을 하고 “한국어와 함께 영어를 국민이 어릴 때부터 배운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는 올라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소득 2만달러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같은 강소국처럼 영어 사용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이 영어 제2 공용어화에 의기투합한 것은 한국 경제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기존 해법으론 풀기 어렵다는 위기감과 절박감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 25%가 영어유치원 출신이라는데 강북은 이 비율이 1%에 불과하다”며 “지금처럼 영어교육을 사교육 등에 맡겨두면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소득격차가 생기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 선생은 “세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정보처리도구인 영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배우겠다는 데 국가가 왜 막느냐”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 경제부장=한국 경제의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계기가 절실합니다. 영어의 제2 공용어화로 그런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박인구 부회장=물론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만 팔리는 시대가 됐습니다. 1등 제품을 만드는 1등 국민이 돼야 살아남는다는 얘기지요. 한국을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전 세계 인터넷 정보의 90%가 영어로 돼 있습니다. 채팅이나 검색을 영어로 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요. 영어를 못해서 잃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복거일 선생=같은 생각입니다.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개인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막는 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미 세계가 하나의 정보처리체계가 된 상황에서 그 공통어인 영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박 부회장=영어에 능통하면 정보 습득과 소통이 빨라집니다. 한국인은 교육수준도 높고 우수합니다. 제도적으로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해주면 훨씬 발전할 거예요. 청년 실업문제도 해결될 겁니다. 영어만 잘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라도 취직할 수 있을 테니까요.
▷복 선생=언어는 본질적으로 정보처리를 위한 수단입니다. 영어 수학 컴퓨터언어가 다 중요한 언어인데 영어만은 학원에서 배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결론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차 부장=영어의 중요성은 공감합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0년대 말에도 영어 제2 공용어화 주장이 부상했다가 사그라졌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박 부회장=영어 공용어화는 민감한 주제입니다. 당시 반대 목소리가 크다보니 국가에서 이를 극복하고 추진할 의지를 상실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민의 언어구사 능력에 한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작은 나라일수록 그렇지요.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싱가포르 홍콩 등이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삼아 성공한 나라들이에요.
▷복 선생=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공용어들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한문이 국제어 역할을 했고, 고대 서양에선 아람어와 그리스 로마어 등이 그랬죠. 지금은 누가 뭐래도 영어가 공용어 아닌가요.
▷박 부회장=분명한 것은 한국어는 지금처럼 국어로 두자는 겁니다. 영어는 제2 공용어가 되는 거죠. 물론 지금도 국민이 영어를 알아서 배웁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두지 말자는 겁니다. 비(非)도덕적이거든요.
▷차 부장=왜 비도덕적인가요.
▷박 부회장=개인에게 맡기면 부유한 집의 자녀만 영어를 잘할 수 있으니까요. 이들은 해외로 어학연수도 가고 교환학생으로도 나갑니다. 그러면 영어가 부(富)의 대물림을 낳는 ‘잉글리시 디바이드’가 심해집니다. 영어 실력에 따른 소득격차가 월 60만원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복 선생=영어 공용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억지를 씁니다. ‘영어를 제2 공용어화하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지요.
▷박 부회장=사실 영어 제2 공용어화는 서민·중산층을 위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같은 곳에서 치고 나와야 할 아젠다입니다. 근데 그분들이 더 반대를 해요. 안타까운 일이죠.
▷차 부장=영어를 제2 공용어화한다면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영어를 쓰도록 해야 할까요.
▷박 부회장=영어는 한국어와 함께 국가 공식 언어가 되겠지요. 관공서와 학교에서 문서를 두 가지 양식으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미디어인데 영어를 쓰는 방송이 몇 개 생겨야겠지요. 그래야 국민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고 쉽게 배울 테니까요.
▷복 선생=그 점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는 복수의 언어를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언어를 뇌리에 각인할 수 있는 것은 11세까지예요. 이때까지는 2~3개 언어를 부작용 없이 동시에 배울 수 있어요.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지 않으면서요.
▷박 부회장=한국인의 지능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뜻을 못 펴는 안타까운 현실을 수없이 봤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한국에서 싸이월드가 먼저 나왔지만 세계 시장은 페이스북이 휩쓸었어요. 싸이월드에 영어 서비스가 없었던 게 결정적 패인이지요.
▷차 부장=영어가 공용어화하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복 선생=정체성은 과거의 유산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를 향하는 시선으로 결정됩니다.
▷박 부회장=세종대왕 이전에 한글이 없을 때도 우리 문화를 지켰습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 되면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복 선생=영어 때문에 언어생활이 빈곤해질 것이란 반론도 말이 안 됩니다. 국민이 어릴 때부터 사자성어를 배우는데, 모두 중국과 관련된 거죠. 얼마나 빈곤합니까. 셰익스피어 같은 또 다른 문화를 알면 안 되는 걸까요. 외교를 봐도 그렇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역사 논쟁에서 우리가 밀리는데, 이건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차 부장=결국 교육이 바뀌어야겠군요. 국어학계의 반발이 클 것 같습니다만.
▷복 선생=영어 공용어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엔 한글학자보다 영어 교수와 교사들이 더 많습니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하면 기득권이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박 부회장=산업현장에서 보면 영어 공용화는 시급합니다. 중소기업 공장에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데 아무도 영어 매뉴얼을 해석하지 못해요. 고장이 나면 해외에서 사람을 불러야 하지요. 그게 우리 산업경쟁력의 현주소입니다.
▷차 부장=지금도 상당수 한국인이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복 선생=발음은 안 좋아도 돼요. 사투리 좀 쓰면 어떻습니까.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됩니다. 계약이나 중요한 의사소통은 대부분 글로 이뤄지니까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 중요한 건 화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양이죠. 개인적으로는 16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외국인을 만났어요. 그때 상대방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조금 알고 가서 먼저 얘기를 꺼내면 모두 감탄하고 상담이 술술 풀려요. 그 나라 민요까지 한 곡 부르면 모든 계약이 성사되지요.(웃음)
▷박 부회장=영어 공용어화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겁니다.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평론가 복거일 선생은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로 활동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은행과 무역회사 등에서 근무하다 1987년 마흔을 넘긴 나이에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등단했다. 소설과 사회비평 등 40여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1998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란 책에서 영어 공용어화라는 화두를 던져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2012년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6권짜리 장편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를 25년 만에 완간하기도 했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은
20년간 옛 상공부에서 근무하다가 1997년 동원그룹으로 옮긴 경영자. 고교 교사로 일하다가 뒤늦게 행정고시(21회)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영어에 관한 각별한 관심은 1984년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으로 나갔을 때 시작됐다.해외생활 9년간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영어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고 한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경제신문 칼럼 등을 통해 영어 제2 공용어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