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대학로 무대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뮤지컬 배우 민우혁이 지난 14일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경제TV 와우스타와 마주했다.



대한민국 최초 야구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이하 ‘너빛속’)’는 비운의 야구 천재 김건덕 선수와 그의 절친 이자 라이벌 이승엽 선수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1994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해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하지만 둘의 운명은 엇갈렸다. 한 선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스타가 됐고, 다른 한 선수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바로 김건덕이다.



“야구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관심이 많았어요. 야구를 한정된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호기심도 많았고, 야구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표현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기회가 안 오더라고요. 이미 캐스팅이 끝난 상황이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소속사에서도 ‘안할 이유가 없지 않냐’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극중 민우혁이 맡은 김건덕은 고등학교 시절 유망주 투수였다. 그런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어깨 부상이 찾아온 것. ‘너빛속’은 아픔과 시련을 겪는 한 청년이 이겨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김건덕 선수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어서 그 분의 정서를 최대한 많이 공감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도 같은 투수였기 때문에 마운드에 섰을 때의 승부 근성, 부상당했을 때의 심정을 겪어봤기 때문에 조금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공연 보러 오신다고 약속 하셨거든요. 집중도가 떨어질 까봐 걱정도 많이 되지만 작품을 보시면서 ‘아 내가 저랬었지’ 하면서 힐링 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우혁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0살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을 해왔다. 손바닥과 허벅지가 터질 만큼 누구보다 열심이었지만 남들보다 부상이 잦았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면 특히 더 했다. 운이 참 안 따라줬다. 그의 인생은 그가 맡은 김건덕과 많이 닮아보였다. 무대 위에서 민우혁은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인생 캐릭터’를 만났어요.(웃음) 강속구를 던질 때 역동적인 자세를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누군가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거든요. 33년 동안 아픔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지 않았어요. ‘과연 관객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첫 공연 후에 그동안 쌓였던 무언가가 폭발한 것처럼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첫 공연 끝나고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많이 울었어요. 제가 감추고 있던 것들이 작품을 통해서 다 터진 것 같아요. 공연 끝나고 집에 가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포장돼있던 민우혁에 대해 속 시원하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집에 가는 내내 저도 모르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힐링이 되고 있었어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가 장점이라는 민우혁은 ‘너빛속’을 통해 ‘생각의 차이’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 말인데, 나 코치 한 번 해볼까? 죽어도 야구는 못 버리겠다.”



“맨 마지막 건덕이가 한 대사에요. 정말 와 닿았어요. 그때 친구인 안효정(박세미 분)이 ‘건덕이 너, 빛의 속도를 넘은 것 같아. 생각이 바뀌는 속도’라고 말해요. 제 생각엔 이 말이 공연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아요. 관객들도 이 부분을 관전 포인트로 두고 보면 더 재밌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각자의 사연이 있고 깊이가 다를 뿐 똑같이 아픔과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건덕이는 다행히 아주 작은 생각 하나를 바꿈으로 어두운 인생 속에서 희망과 행복, 또 다른 꿈을 찾게 되요. 저는 주위에 힘들어하는 지인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요. ‘조금만 생각을 바꿔봐’라고요. 관객들도 이 장면을 보고 가슴 속에 그런 걸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민우혁은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었다. 그야말로 행복해보였다. 그에게 아픔, 위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어렸을 때 덩치가 좋아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엄청 좋아하시는 스포츠여서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해오다가 20살에 발목 인대가 다 끊어졌어요. 훈련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공이 떨어져 있는 걸 못보고 밟고 다치게 된 거죠. 그때 인생의 갈림길에 섰었어요. 마음은 그만두는 거였지만 10년 동안 나 하나만 바라보신 부모님이 걸렸어요.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노래가 하고 싶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 왔어요. 처음엔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부모님께 내가 꿈꾸는 일을 하면서 정말 잘 돼서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현실은 아니더라고요. 사기꾼도 만나고, 악덕회사에 걸려서 엄청 맞기도 하고 최악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내 길이라고 믿고 계신 부모님에게 ‘이건 아니다’라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렇게 버텼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공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민우혁은 뮤지컬 ‘젊음의 행진’(2013), ‘풀하우스’(2014), ‘김종욱 찾기’(2014), ‘사랑하니까’(2014), ‘총각네 야채가게’(2014), ‘쓰루더도어’(2015), ‘너빛속’(2015)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그는 정식 뮤지컬로 데뷔한지 1년 7개월 정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간의 노력이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30년 이상을 지금을 위해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때 만약 그런 고생 안하고 버티지 못했으면 아마 지금의 민우혁은 없었을 거 에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불안정하잖아요. 누구나 생활고도 있고, 어려서 잘 되도 커서 힘들게 될 수도 있고요. 보이기에만 화려한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겪고 보니까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요. 버티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께 했던 약속이 있었고, 힘든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지금 버티고 있고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한 것 같아요. 살면서 운도 지지리도 없고, 어떻게 이렇게 안 풀릴까 했던 거와 달리 지금 반전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요. 노래만 생각했던 제가 건덕이처럼 생각을 조금만 바꿨는데 지금은 노래, 춤, 연기를 하고 이게 제 꿈이 돼서 달리고 있어요. 제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생각을 조금만 바꾸고 그 안에서 행복과 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민우혁은 대학로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한다. 짧은 시간 내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절실함이 통해서가 아닐까.



“저도 그 글 봤어요. 글씨에 대고 절했어요.(웃음) 정말 감사해서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 듣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제가 배우로서의 기간도 짧고 신인이라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저에 대한 자존감이 생겼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힘이 됐어요. 처음 ‘젊음의 행진’할 때 팬이 생겼는데, 그 때 한 분이 똑같은 공연을 15번 보신 거에요. 그 때 그분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에너지를 유지하냐면서 그 에너지에 반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결 같이 되건 안 되건, 어색하건 아니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 모습을 알아봐주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게 많아요. 그래서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게 봐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민우혁은 무대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모습이고 빛이 난다.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노래와 연기를 할 수 있는 곳. 그에게 무대란 남다른 의미다. 그리고 그는 더 큰 꿈을 꾸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제가 연기를 시작한 게 무대잖아요. 어떻게 보면 제가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소중한 장소이고, 무대에서 연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 대한 추억도 많이 생겼고요. 앞으로 연기자로 걷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진심을 다해서 하고 있어요. 이 말을 10년, 20년이 지난 후에도 한결 같이 지킬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100% 충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잘 되지 않을까요?”




와우스타 이슬기기자 wowstar@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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