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위기와 가치관
요즘 그리스 사태로 유럽을 포함한 세계가 시끄럽다. 그리스가 결국 유럽연합(EU)을 탈퇴할 것이냐 마느냐 일촉즉발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불안했던 EU 체제가 그리스로 인해 붕괴되지나 않을까,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시하면서 각자 득실을 따지고 있다. 최대 이해 당사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까지 나서 자기 주장을 하는 모양새다.

EU는 언어도 정치체제도 다르고, 종교와 문화도 다른 나라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 나라들을 (경제에 한해서지만) 하나로 묶는 EU의 실험은 경탄과 우려를 동시에 가져왔다. 가능할까. 부작용은 없을까. 과연 모두에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까. EU의 역사는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중·일 3국 경제 공동체 주장이 나오고 있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각각의 개인(또는 개체)을 하나로 묶는 방법은 다양하다. 국가체계처럼 정치 제도로 묶을 수 있고, 종교로 묶이기도 한다. 영미권, 중화권처럼 언어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법과 규정으로 촘촘하게 강제성을 띠기도 하고, 느슨하게 묶여 있지만 공동체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방식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묶여 있는 형태가 무엇이든 중요한 건 구성원이 한 방향으로 정렬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울타리로 묶인 이유가 있을진대,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이 속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있을 때 그 말들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인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한 방향 정렬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가치관으로 묶어주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는 이유를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게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그 공동체가 어떤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개인, 사회, 국가, 나아가 인류 전체에 어떤 가치를 주는지 말이다. 이렇게 명확한 가치관으로 개개인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현실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구성원들은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이 같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미래를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미래가 마음에 들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계획한다. 혼자 만드는 미래보다 공동체가 함께 이뤄내는 미래가 더 설레고 기대가 크다면 같이 가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와 협력과 우정을 쌓아 동료의식을 갖게 된다. 사실 미래를 같이 그려 나가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소비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같이 꿈꾸는 미래를 만들려면 모두가 지켜야 할 원칙과 우선순위부터 정해야 한다. 같은 원칙을 지키고, 같은 우선순위로 판단할 때 갈등과 불필요한 논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외부인의 눈에 이들이 하나로 보이게 된다. 존재 이유, 미래의 꿈, 원칙과 우선순위, 이것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가치관이다. 가치관이 튼튼하게 자리 잡히면 어떤 제도나 규정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촘촘하게 짜인 매뉴얼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 각자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때문이다.

EU는 어떤 가치관으로 묶여 있을까.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유럽 각 나라, 더 나아가 인류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싶어 할까. 그들이 함께 꿈꾸는 미래 모습은 무엇일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EU 회원국 각자는 어떤 원칙과 우선순위를 지켜야 할까.

그리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EU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각국의 이해득실, 정치적 고려보다는 위의 질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길 바란다. 여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한 방향으로 정렬돼 있다면 사공이 많을수록 배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조미나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