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해저드에 빠진 한국] 금요일엔 '유령도시'…열정이 식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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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임원기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
임원기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
![[세종시 해저드에 빠진 한국] 금요일엔 '유령도시'…열정이 식어간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07/02.6930462.1.jpg)
평일에도 ‘대이동’은 일상이다. 관련 업계 사람에게 매번 세종으로 내려오라고 할 수는 없다. 늘 그렇듯 국회와 청와대 일정은 예고없이 잡힌다. 매일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출퇴근족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8개 경제부처 과장급 이상 간부 124명에게 ‘직구’를 던졌다. 세종시로 옮긴 뒤 솔직히 정책 품질이 떨어지지 않았느냐고. 예상대로 74%라는 절대다수가 그렇다고 시인했다. 서울 출장 가는 데 평균 두 시간은 걸린다. 왔다 갔다 하면 족히 너댓 시간은 길바닥에서 날아간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과 동떨어져 있다보니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자주 못 듣는 것도 정책이 헛다리를 짚는 요인이다. 정부 부처 간 또는 부처 내 소통도 부족해졌다. 사무실 내 옆자리 동료와도 만나기 힘들어졌다는 게 공무원들이 털어놓는 세종청사의 현실이다.
정책 추진 과정도 헐렁해졌다. “후배들 교육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 내야 하는 보도자료 점검조차 꼼꼼하게 하기 힘들다”는 게 관료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돌발 사태에 대처하기도 어려워졌다. 과천청사 시절 30분 정도면 국회나 청와대에 닿았다. 지금은 두 시간 이상 걸린다.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에 가면 자투리 시간에 갈 곳이 없어 커피숍을 전전하는 고위 공무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국처럼 정보기술(IT) 환경이 발달한 나라에서 어디서든 일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 하면 공무원들로부터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대학생 리포트 작성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잇따른 정책 대응 실패에 대한 공무원들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하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놓고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질책만 하는 게 온당한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밤샘 작업을 하느라 온종일 환하게 켜져 있던 예전 과천청사의 모습은 이젠 추억이다. 먼 길을 달려 집에 가겠다는 부하 직원을 붙잡기는 어렵다. 소주 한잔으로 다져지던 끈끈함도 옛일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과거 같은 수준의 정책이 나온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않을까.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