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가 잃어버린 말들…연극 ‘스피킹 인 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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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형식을 통해 현대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작품이다. 1996년 시드니에서 초연된 연극은 당시 호주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1년도에는 영화 ‘란타나’라는 작품으로 각색돼 개봉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고, 대본은 2003년 런던비평가협회상에서 작가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3막으로 나누어진 연극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1막, 2막, 3막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얇은 실로 꿰어져 있는 것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 다양한 인물이 얽혀 있어 줄거리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1막의 실마리들은 2막과 3막으로 이어지고, 2막과 3막의 단서들은 1막의 빈틈을 메운다. 이야기들은 서로의 상관관계를 파악해야만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조각난 이야기의 파편들이 모이면 그제야 이야기의 핵심은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작품의 장면들은 매우 빡빡하게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잠시만 호흡을 놓쳐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놔버리기 쉽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약 2시간 10분가량의 긴 시간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의 적극적인 몰입이 몹시 필요한 작품이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부유하는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관계의 무너짐과 회복, 도피, 결핍, 불신 등 그 모습도 다양하다. 인물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말’의 ‘대답이 되어줄 수 없는 존재’로서 상대를 파괴하고 소실한다. 종종 극중 인물 사이에서 오고가는 텅 빈 말들은 지독한 이기의 양날로 번뜩여 보는 관객의 숨마저 조인다.
무대는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특히, 1막은 상황, 무대, 대사, 장면의 미장센까지 쌍둥이처럼 흡사하게 찍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중의적인 대사가 두 인물 이상에게 오버랩되면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은 같은 대사를 동시에 내뱉으며 네 인물의 복잡한 상황과 심경을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서로 다른 인물들에게 공감 혹은 반감을 느끼며 이야기에 서서히 스민다.
동선은 이야기의 층위를 더욱 밀도 있게 쌓는다. 1막에 등장하는 레온과 제인, 피트와 쏘냐는 각각 불륜을 저지르기 위해 싸구려 모텔로 향한 이들이다. 원래는 레온과 쏘냐, 피트와 제인이 부부 사이이다. 레온과 제인은 싸구려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피트와 쏘냐는 하룻밤을 보내는데 실패한다. 작품은 하룻밤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복잡한 동선으로 배우들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레온과 피트가 무대 양 옆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쏘냐와 제인은 눈앞의 파트너인 피트와 레온을 두고 현재 남편들의 옆으로 다가가 대사를 한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는 매우 가깝지만 정작 소통하는 사람은 낯선 타인인 경우가 많은 현대인의 쓸쓸한 관계를 묘사한다.
각 장들의 이미지는 꼬리물기 식의 의미를 파생시킨다. 특히, 2막부터 3막에 이르기 까지 닐의 편지를 한장씩 버리는 사라-발레리의 전화를 받지 않는 존-존의 전화를 받지 않는 사라의 이미지들은 서로 이야기 속에 맞물리면서 더욱 주제를 강력하게 호소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들은 앞선 1막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와 더해지며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를 이야기의 표면 위로 밀어 올린다. 극장을 뒤돌아 나올 때에도 이러한 이미지들이 여운을 대신한다.
극중 등장 인물들의 말은 허공에서 부르짖다 사라진다. 인물들은 단지 자신의 말로만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 개인의 말은 오로지 자신을 향할 뿐, 방백처럼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제인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간절히 원했던 것이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 ‘상대를 향한 간단명료한 믿음’이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신뢰와 믿음이 가장 큰 밑기둥이 된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믿음을 잃었거나, 상대의 자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내어주고 마는 사람들이다.
드러난 불륜 사실 앞에 쏘냐와 레온은 재결합을, 피트와 제인은 제각각의 길을 걷게 된다. 피트와 제인의 서로의 말만 하다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다가도 끝내는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고야 만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춤추지 못한다. 쏘냐는 레온은 다르다. 쏘냐는 레온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다. 비록 그것이 귀찮고 밉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말일지라도 말이다. 두 삶은 손을 붙잡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레온과 쏘냐는 어쩌면 이 사건을 통해 서로의 말을 ‘듣는 것’이 소통을 위한 첫 단계라는 것을 ‘한숨 뒤의 성찰’을 통해 배운 유일한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극중 등장하는 9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네 배우의 열연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각 배우들은 극중 2~3역을 소화한다. 특히, 1막의 경우 같은 대사를 여러 명의 배우들이 타이밍을 맞춰 내뱉어야 하는 형식이라 연기적인 부분의 자유도 제한된다.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만 주제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승준(레온/닉), 강지원(쏘냐/발레리), 김종구(피트/닐/존), 정운선(제인/사라)은 제한적인 감정의 공간 속에서도 착실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들은 튀거나 가라앉은 배역 없이 고른 느낌의 조화로 극의 전체 그림을 완성했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7월 19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와우스타 정지혜기자 wowstar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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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형식을 통해 현대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작품이다. 1996년 시드니에서 초연된 연극은 당시 호주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1년도에는 영화 ‘란타나’라는 작품으로 각색돼 개봉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고, 대본은 2003년 런던비평가협회상에서 작가상의 영예를 안았다.
총 3막으로 나누어진 연극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1막, 2막, 3막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얇은 실로 꿰어져 있는 것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 다양한 인물이 얽혀 있어 줄거리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1막의 실마리들은 2막과 3막으로 이어지고, 2막과 3막의 단서들은 1막의 빈틈을 메운다. 이야기들은 서로의 상관관계를 파악해야만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조각난 이야기의 파편들이 모이면 그제야 이야기의 핵심은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작품의 장면들은 매우 빡빡하게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잠시만 호흡을 놓쳐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놔버리기 쉽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약 2시간 10분가량의 긴 시간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의 적극적인 몰입이 몹시 필요한 작품이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부유하는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관계의 무너짐과 회복, 도피, 결핍, 불신 등 그 모습도 다양하다. 인물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말’의 ‘대답이 되어줄 수 없는 존재’로서 상대를 파괴하고 소실한다. 종종 극중 인물 사이에서 오고가는 텅 빈 말들은 지독한 이기의 양날로 번뜩여 보는 관객의 숨마저 조인다.
무대는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특히, 1막은 상황, 무대, 대사, 장면의 미장센까지 쌍둥이처럼 흡사하게 찍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중의적인 대사가 두 인물 이상에게 오버랩되면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은 같은 대사를 동시에 내뱉으며 네 인물의 복잡한 상황과 심경을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서로 다른 인물들에게 공감 혹은 반감을 느끼며 이야기에 서서히 스민다.
동선은 이야기의 층위를 더욱 밀도 있게 쌓는다. 1막에 등장하는 레온과 제인, 피트와 쏘냐는 각각 불륜을 저지르기 위해 싸구려 모텔로 향한 이들이다. 원래는 레온과 쏘냐, 피트와 제인이 부부 사이이다. 레온과 제인은 싸구려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피트와 쏘냐는 하룻밤을 보내는데 실패한다. 작품은 하룻밤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복잡한 동선으로 배우들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레온과 피트가 무대 양 옆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쏘냐와 제인은 눈앞의 파트너인 피트와 레온을 두고 현재 남편들의 옆으로 다가가 대사를 한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는 매우 가깝지만 정작 소통하는 사람은 낯선 타인인 경우가 많은 현대인의 쓸쓸한 관계를 묘사한다.
각 장들의 이미지는 꼬리물기 식의 의미를 파생시킨다. 특히, 2막부터 3막에 이르기 까지 닐의 편지를 한장씩 버리는 사라-발레리의 전화를 받지 않는 존-존의 전화를 받지 않는 사라의 이미지들은 서로 이야기 속에 맞물리면서 더욱 주제를 강력하게 호소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들은 앞선 1막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와 더해지며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를 이야기의 표면 위로 밀어 올린다. 극장을 뒤돌아 나올 때에도 이러한 이미지들이 여운을 대신한다.
극중 등장 인물들의 말은 허공에서 부르짖다 사라진다. 인물들은 단지 자신의 말로만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 개인의 말은 오로지 자신을 향할 뿐, 방백처럼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제인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간절히 원했던 것이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 ‘상대를 향한 간단명료한 믿음’이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신뢰와 믿음이 가장 큰 밑기둥이 된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믿음을 잃었거나, 상대의 자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내어주고 마는 사람들이다.
드러난 불륜 사실 앞에 쏘냐와 레온은 재결합을, 피트와 제인은 제각각의 길을 걷게 된다. 피트와 제인의 서로의 말만 하다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다가도 끝내는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고야 만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춤추지 못한다. 쏘냐는 레온은 다르다. 쏘냐는 레온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다. 비록 그것이 귀찮고 밉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말일지라도 말이다. 두 삶은 손을 붙잡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레온과 쏘냐는 어쩌면 이 사건을 통해 서로의 말을 ‘듣는 것’이 소통을 위한 첫 단계라는 것을 ‘한숨 뒤의 성찰’을 통해 배운 유일한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극중 등장하는 9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네 배우의 열연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각 배우들은 극중 2~3역을 소화한다. 특히, 1막의 경우 같은 대사를 여러 명의 배우들이 타이밍을 맞춰 내뱉어야 하는 형식이라 연기적인 부분의 자유도 제한된다.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만 주제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승준(레온/닉), 강지원(쏘냐/발레리), 김종구(피트/닐/존), 정운선(제인/사라)은 제한적인 감정의 공간 속에서도 착실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들은 튀거나 가라앉은 배역 없이 고른 느낌의 조화로 극의 전체 그림을 완성했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7월 19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와우스타 정지혜기자 wowstar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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