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돈, 증시로 몰린다…'2단계 유동성 장세'오나
작년 3분기까지 주춤거렸던 글로벌 증시가 상승세를 탄 후 이달 들어서는 그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대부분 증시가 오르고 있다. 올 2월 말까지 각종 위기설에 휩싸였던 러시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증시도 ‘저가 메리트(cherry picking)’까지 부각되면서 반등 국면에 재진입했다.

글로벌 증시가 강한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세계 경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회복국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유일하게 낙관적으로 예측됐던 미국 경제는 근립궁핍화(beggar-thy-neighbor) 성격이 짙은 강한 달러의 부담으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2.2%로 둔화(3분기 5%)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는 0~1%대로 더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 유럽 경제도 아직까지 침체 혹은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돈, 증시로 몰린다…'2단계 유동성 장세'오나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노무라증권, BNP파리바 등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도 4월 수정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3.1%로 하향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증시가 상승하는 가장 큰 요인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 완화(QE)가 주도했던 때(1단계)와 달리 이번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의 QE로 글로벌 유동성이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저금리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예금금리 등 각종 시중금리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수준에 근접하면서 은행, 채권시장에서 이탈한 자금도 증시로 몰리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 속에 글로벌 증시가 활황을 보임에 따라 한편에서는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증시 거품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에 ‘2단계 유동성 장세가 나타날 것인가’ 여부는 QE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기 회복에 기여하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면 실물경기가 회복되기까지 그 정책 기조가 지속되고, 증시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2단계 유동성 장세’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에 낀 거품 우려로 실물경기가 회복되기 이전이라도 ‘긴축’ 기조로 돌아서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해왔던 통화완화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리스크(위험)를 내재하고 있다.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은 금리 하락을 유발함으로써 투자자가 수익성 확보를 위해 보다 고위험 자산을 보유하려는 유인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 오를 경우 거품이 발생한다.

시장에 참가한 금융회사에는 중앙은행의 적격담보 확대 등으로 담보 제약이 완화되고, 저금리로 인해 VaR(Value at Risk·정규분포상 양측 끝에 해당하는 꼬리 위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 금액 추정치)이 낮아짐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이 크게 높아진다. 은행보다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불일치 정도가 큰 보험사의 경우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다른 금융회사보다 리스크가 커진다.

네 가지 내재적인 리스크로 볼 때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이 아직은 금융시장 안정을 크게 해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고위험 자산보유 현상은 증권사와 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건전성 규제 등으로 위험선호 현상이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해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주당순이익(PER) 등으로 각국의 주가를 평가해 보면 종전 수준에 비해 상승하고 있으나 아직 거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단계에는 못 미치고 있다.

금융회사별로는 바젤Ⅲ 등 과도한 레버리지 비율 상승을 억제하는 규제정책이 각국의 통화완화정책과 함께 시행됨에 따라 레버리지 비율이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통화완화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경기 회복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각국이 실물경기가 어느 단계 이상 회복하기까지는 지금의 통화완화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미 강한 달러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Fed도 유동성 환수, 금리인상 등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 추진에 최대한 신중을 기할 가능성이 높다.

Fed가 금리를 올리는 경우라도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금리정책이 금융시장 안정을 유도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점을 감안, 시장 참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모니터링하는 ‘미시 건전성 정책’과 금융위기 전염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고 금융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거시 건전성 정책’을 병행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