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최전선에 과감히 뛰어들어라"
“지금까지는 여성 임원의 수가 너무 적었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리더들이 배출될 거예요. 현직 여성 임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죠. 고군분투하며 앞서 닦은 길을 후배들이 걷게 될 겁니다. 여성 임원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더 많이 올라가야 하고 지금의 자리는 후배들에게 내주면서 여성 리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 여풍의 중심에는 여성 임원들의 맹활약이 있다. 남성 중심 조직 생태계에서 위풍당당 경쟁력을 입증하며 ‘별’이 된 그들은 감각적이고 섬세한 여성의 강점과 남성 못지않은 패기와 열정, 책임감으로 불확실한 기업 환경 속 난제를 풀어내는 실력자들이다. 많은 여성 후배의 롤모델이자 멘토로 리더십을 펼치고 있는 여성 임원 5인의 성공 노하우를 담아본다.

남녀 역할 따로 있지 않아

송희경 KT 상무(공공고객본부장)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며 살아간다. 회사 공식 직함 이외에도 클라우드산업협회장 등 화려한 이력과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다. 대우전자시스템에서 최초 여성 과장, 최초 여성 임원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며 두 개의 석사 학위와 국가 공인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공부하며 이룬 성과다.

“‘여자니까 적당히 하자’보다 남녀가 동등하게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이제 한국도 여초 사회가 됐는데, 남성 홀로 가정이나 국가를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같이 뛰며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자녀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일과 가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슈퍼우먼’이 되기보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했다.

송 상무는 임원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자기 계발’과 ‘탁월한 성과’를 꼽았다. 또한 “업무에서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며 “좀 더 터프한 업무를 하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영업 등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최전방보다 후방 지원 부서나 연구직을 더 선호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성 임원의 비율을 더 끌어올리고 임원 중에서도 상무 이상의 시니어 임원과 최고고객책임자(CCO)·최고경영자(CEO)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중요한 자리에 진출해 성과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송 상무는 “여성들이 좀 더 리스크를 감수하고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장으로서 남성이 짊어지는 무게와 절박함을 이해하고 ‘스킨십’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며 벽을 허무는 게 남자 상사들과 잘 지내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충직한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서는 일과 능력에 차별화를 둬야 합니다. 여성이 가지는 꼼꼼함과 섬세한 관리능력을 기본으로 직원들과 어울려 현장에서 솔선수범한다면 성과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SK그룹은 올해 초 신규 임원 87명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이때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 참석한 이가 SK네트웍스의 박수진 상무다. 현재 패션본부에서 타미힐피거·클럽모나코·DKNY 등 라이선스 브랜드를 총괄하는 박 상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변리사 준비를 하던 중 진정한 적성을 찾아 다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기획사, 전시 디스플레이, 리빙 관련 데커레이션, 방송·잡지 스타일링 등 경험을 거쳐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경력을 쌓았다. 브랜드팀장을 거쳐 올해 전체 사업을 총괄하는 상무로 승진했다. SK가 DKNY를 론칭할 때 신규 사업팀으로 합류한 후 10년 만에 ‘별’을 달게 됐다. 올해 그룹 내 유일한 여성 신규 임원이자 비주얼 머천다이저에서 사업 총괄 임원으로 변신한 사례로 국내 최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임원을 목표로 일하지 않았어요. 다만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진짜 적성을 찾아 즐겁게 일했던 게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계속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회사에도 감사해요.”

즐기는 자를 따라갈 수 없다

일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매 순간을 지내다 보니 성과가 따라왔다는 설명이다. 이공계 출신 비주얼 머천다이저의 균형 감각이 강점인 박 상무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편이다.

“지금은 종합적인 시각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매장 경험이 많다 보니 현장의 시각으로 질문을 많이 던질 수 있었고 그런 부분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박 상무는 ‘경쟁’에 대해 조금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경쟁을 위한 경쟁은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성장에도 한계를 보인다는 것. 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몰입’을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위한 조건으로 꼽았다.

“사실 사회생활을 끝까지 할 것인지 아닌지는 제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내가 어느 순간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할 때 만족감을 느끼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흔히 직장 내에서 여성의 단점으로 ‘개인주의’가 꼽히기도 한다. 조직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송 상무는 “개인기보다 일에 대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에 대한 태도가 좋은 사람이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다면 후자가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태도는 결국 일과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대홍기획에서도 올해 신규 여성 임원 승진자가 나왔다. 이상진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이 상무는 롯데의 야심작인 ‘클라우드’의 광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는 자타 공인 ‘주류 전문가’다.

전문성을 쌓기 위한 이 상무의 노력은 업계에도 정평이 나 있다. 오비맥주 광고를 담당했던 시절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과 폭탄주 20잔을 마시고 끝까지 버텨 정신력을 인정받았고 위스키 광고를 담당할 때는 룸살롱으로 현장 인터뷰를 나가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때론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이 상무는 당차게 상황을 돌파해 나갔다.

“클라이언트가 저를 전문가로 신뢰하지 않아 ‘모든 맥주 맛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며칠 후 실제 회의실에 맥주를 종류별로 펼쳐놓고 맛을 구분해 보라는 시험을 받기도 했는데 한 번에 찾아냈죠.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이 상품이 내 것이라는 주인 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팔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던 게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습니다.”

그는 직장 내 소통을 위해 남성과 여성의 리더십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직에서 많은 여성들이 고충을 겪는 이유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다. 박 상무는 의사소통을 위해 ‘거울론’을 언급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관계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한 행동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 또한 똑같이 반응하는 거예요. 물론 상대방이 먼저 부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지만 저도 똑같이 반사시키면 관계가 틀어지겠죠. 적어도 제 쪽에서는 긍정적인 빛을 보내야겠다고 계속 노력하고 직원들에게도 강조하는 편입니다.”

이 상무는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협력’을 꼽았다. ‘희생’을 기반으로 얻은 성공에서 이제는 부부와 가족 간의 협력이 기본이 되는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여성 리더십 필요로 하는 사회

홍상희 LG CNS 상무는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정통 IT 엔지니어 출신이다. 1991년 첫 직장인 LG CNS에 입사한 홍 상무는 이후 24년간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기업 업무 관리 시스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LG CNS를 대표하는 ERP 전문가로 꼽힌다. 홍 상무는 임원이 된 소감으로 “지금은 모바일 환경,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기존 기술과 융합되는 시기이자 기업의 새로운 기술을 전통적 시스템 업무에 성공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고객사에서 신기술을 경영 효율화에 도입, 기업 경쟁력 확보에 활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 상무는 임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했던 것’을 꼽았다. 그는 “후배들을 보면 빛나는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어떤 친구들은 일을 골라 하려고 한다”며 “이슈가 많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배울 게 있고 리더로 성장하는 데는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패나 성공의 경험 혹은 하찮거나 빛나는 경험 모두 버릴 게 없다는 설명으로,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한다.

“후배들에게 평소 ‘꽃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자기에게 오지 않는다’고 조언해요. 그런 곳은 보기에 좋아 보일지 몰라도 이미 남들이 다 배워간 곳으로 새로울 게 전혀 없죠.”

홍 상무는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언으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고 말했다.

“사회적 통념상 똑같은 환경이라면 여성보다 남성이 승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사실 리더로서 보면 남자든 여자든 일 잘하는 사람이 예쁘거든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여자니까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는 소극적인 마인드를 깨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여성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포스코의 박미화 상무는 한 회사에서 ‘충성심’을 보여 임원의 자리에 올랐다. 박미화 상무는 1989년 포스코 입사 이후 IT와 IT 관련 경영 기획, 사업 관리, 기업 문화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 왔고 올해 2월 포스코 정보기획실장 상무로 승진했다.

여성 리더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은 가정과 회사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워커홀릭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 상무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처음엔 가정과 일 모든 면에서 슈퍼우먼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을 가족과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남편, 저를 지켜봐 주는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박 상무는 여성 리더십의 강점으로 ‘부드러운 소통’을 꼽았다. 예민하고 민감한 사안들이 있을 때마다 자녀를 둔 어머니의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볼 것을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섬세하게 상황을 보고 부드럽게 소통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동료의 특성을 잘 살펴 각자의 역량을 잘 발휘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칭하는 게 요즘 리더십의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철강업이라는 특성과 남성 중심 조직에서 당당히 여성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노하우로 ‘객관적인 시각’과 ‘디테일한 업무 능력’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는데 그것을 극복했던 비결은 저 자신에게 당당했던 것이었다”며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자기 자신의 ‘팬’이 돼라”고 조언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06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