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대통령' 박성택 당선] 대기업 나와 창업 택한 박성택, '통 큰 스타일'로 중기인 마음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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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 투표서 이재광 제쳐
"무역업으로 승부 보자"
건축자재 팔아 사업 키워…투자회사 등 계열사 4개
위기 해결사
아스콘연 갈등 봉합…회원사 240→490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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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위해 대기업 나와
박 회장은 어려서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인 LG그룹에 입사했다. 과장까지는 무난히 승진했다.
1989년 어느날 그는 태스크포스(TF)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2000년 LG그룹의 비전을 수립하는 TF였다. 당시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함께했다. 맥킨지가 일하는 방식을 보며 그는 자극을 받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이를 근거로 그룹의 미래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때 나온 데이터 가운데 하나가 주택보급률이었다. 당시 국내는 약 60%였고 선진국은 105% 정도였다. 데이터를 본 그의 마음속에 사업가의 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박 회장은 LG금속의 중요한 업무인 원자재 구매와 건설업을 연결시켰다. “그래 무역이야.” 건축수요에 비해 부족한 건축 자재를 들여다 팔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1990년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경험에 대해 박 회장은 “조직을 이해하고 긴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준 대기업 경험은 큰 자산이었다”고 말했다. 회사를 나와 무역회사인 산하물산을 설립했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컨테이너로 건축 자재를 수입해 팔면 돈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1993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위기를 맞았다. 그는 “건자재 원료를 구하기 위해 돌산 등을 많이 샀는데 그것 때문에 죽다 살았다”고 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산하와 골재 생산을 하는 위업개발, 투자회사인 위업인베스트먼트, 특수기름을 유통하는 라우러스 등 4개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통 큰 관리로 마음을 얻다
![['중기 대통령' 박성택 당선] 대기업 나와 창업 택한 박성택, '통 큰 스타일'로 중기인 마음 잡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02/AA.9645346.1.jpg)
올해 초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중기중앙회였다. 2년간 다니다 보니 중앙회 내에 서열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스콘업계의 수장으로서 회의에 갔을 때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뭔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그에게 중앙회장 출마를 권유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중앙회를 위한 중앙회가 아닌 진짜 중소기업을 위한 중앙회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출마했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다. 그가 첫 번째 공약으로 “업종·지역별로 추천을 받아 중앙회 부회장과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를 내세운 이유다.
27일 결선투표에서 그는 294표를 얻어 204표를 얻은 이재광 후보를 제치고 제25대 중기중앙회 회장에 당선됐다. 사업을 하겠다고 대기업을 그만두고 뛰쳐나온 박 과장이 중소기업계 수장에 오른 것이다.
■ 박성택 중기중앙회장 약력
△1957년 경기 안성 출생 △서울 경희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4년 LG금속(현 LS니꼬동제련) 입사 △1990년 산하물산 설립 △산하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