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게임황제' 김정주의 '名品 브랜드' 사냥
마켓인사이트 2월16일 오후 4시40분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의 집은 두 곳에 있다. 제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제주에 머물 때는 대주주 자격으로 자신이 창업한 넥슨 등의 경영을 들여다본다. 1년 중 절반을 보내는 샌프란시스코에선 다르다.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다니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는 게 일이다. 독일의 명품 스포츠 의류업체인 보그너 인수전에 최근 뛰어든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작품 중 하나다. 재작년엔 노르웨이의 명품 유모차 업체 스토케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같은 해 레고 블록을 거래하는 사이트 브릭링크를 매입하기도 했다.

인수주체 NXMH벨기에…자산 1조140억원

NXC의 100% 자회사인 NXMH벨기에가 한국 사모펀드(PEF)와 손잡고 보그너 매각 입찰에 참여해 예비입찰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골드만삭스가 주관하는 본입찰은 다음달 초 진행될 예정으로 NXC 컨소시엄을 비롯해 유럽계 PEF인 퍼미라와 미국계 PEF 한 곳 등 3곳이 경합을 벌인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매각 가격은 지분 100%를 기준으로 최소 4억유로(약 5014억원)를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보그너는 1932년 스키점프 선수이던 빌리 보그너가 창업한 독일 브랜드다. 국내에선 골프복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 벌에 1만유로(약 1250만원) 안팎인 스키복이 핵심 상품이다. 2013회계연도에 2억4050만유로(약 3014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600만유로(약 325억원)의 세전이익을 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년 하반기에 매물로 나왔다.

‘게임 황제’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 대표가 명품 글로벌 비즈니스에 나서는 것을 정보기술(IT)업계에선 흥미롭게 보고 있다. PEF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등 전문 투자자 못지않은 수완을 발휘하는 것도 주목거리다. 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는 그의 ‘멀티 능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게임회사가 웬 명품?’이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레고 블록 거래 사이트인 브릭링크를 샀을 때는 “레고 마니아인 김 대표가 사업과 취미를 혼동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김 대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김 대표는 “시장이 있고, 비전이 있다면 도전해보는 게 당연한데 왜 곱게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는 후문이다.

김정주 “시장 있고 비전 있다면 도전은 당연”

김 대표가 명품 비즈니스를 통해 노리는 시장은 중국인 것으로 전해진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넥슨은 던전앤파이터라는 온라인 게임이 중국에서 대박을 내면서 급성장했다”며 “김 대표만큼 중국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자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스토케 같은 명품 유아용품 시장은 전망이 밝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그너 인수 역시 중국의 고급 스포츠 시장 확대에 주목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1952년 만들어진 몽클레르라는 브랜드가 중국에서 ‘명품’ 취급을 받으며 매출이 급증해 2013년 말 밀라노 주식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된 것을 본떠 보그너를 ‘제2의 몽클레르’로 만드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기업 인수에 관한 한 ‘귀재’로 통하는 만큼 해외 명품 브랜드 인수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스토케에 이어 보그너 인수 주체로 알려진 NXMH벨기에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NXMH벨기에는 NXC의 100% 자회사로 작년 말 감사보고서상 자산이 1조140억원에 달한다. 2010년 1320억원에서 9배가량 불어난 것이다. 일각에선 MXMH벨기에가 김 대표의 ‘패밀리 오피스’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NXC 지분 48.5%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식 가치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