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을 다룬 영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이중섭을 다룬 영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 최근 일본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80분짜리 이 영화에는 이중섭미술관과 네 식구가 살았던 제주 서귀포에 있는 4.3㎡(약 1.3평)짜리 골방, 자구리 해안 등이 배경이다. 가족의 사랑과 애달픈 이별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이 영화의 축약본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의 새해 첫 기획전 ‘이중섭, 사랑과 가족’(내달 1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한쪽에서 상영 중이다.

최근 화가나 그림이 영화 소재로 활용되는 ‘아트 시네마’가 확산되고 있다. 이중섭의 삶뿐만 아니라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 비운의 미술가 마거릿 킨, 스페인 화가 고야 등 국내외 화가와 작품이 영화 소재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미술과의 접목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소비자, 이른바 ‘아티젠(art+generation)’이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파격적인 소재와 빛나는 미술효과, 그림 소품 등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빅 아이즈’에서 미술가 마거릿 킨 역을 맡은 배우 에이미 애덤스가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영화 ‘빅 아이즈’에서 미술가 마거릿 킨 역을 맡은 배우 에이미 애덤스가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스페인 화가 고야의 명작 ‘웰링턴의 공작부인’ 도난 사건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 ‘모데카이’는 설날 연휴 첫날인 18일부터 전국 극장가에서 관객을 맞는다. 나치의 비밀계좌가 숨겨진 전설의 그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희대의 미술품 사기극을 그린 영화로 키릴 본피글리올리의 유명 3부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살아 숨쉬는 연기, 세련된 영상미,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을 비롯해 러시아와 미국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명소를 담아내 거대한 스케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국 화단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터너의 마지막 25년을 영화화한 ‘미스터 터너’는 지난달 22일 개봉,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마이크 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터너의 예술과 삶에 대한 열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터너의 괴팍하고 이기적인 면모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거장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다뤘다. 스크린을 통해 그의 수작들을 감상하는 짜릿한 재미도 선사한다. 터너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1838년작)를 비롯해 ‘노예선’(1840년작), ‘눈보라-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1842년작) 등에서는 웅장한 자연과 빛이 어우러진 모습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1950~1960년대 미국 미술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림 ‘빅 아이즈’에 얽힌 영화도 눈길을 끈다. 영화 ‘빅 아이즈’는 비운의 미술가 킨과 그의 재능을 이용해 진짜 작가 노릇을 하며 부를 챙긴 남편 얼터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그렸다. 영화 속에는 ‘빅 아이즈’ 그림 400여점이 곳곳에 배치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팀 버튼 감독 스스로도 ‘빅 아이즈’를 자신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림으로 꼽았을 정도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예술세계를 다룬 영화도 나왔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제네시스-세상의 소금’은 빔 벤더스 감독이 쿠바의 전설적인 뮤지션 그룹을 다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과 천재 무용가 피나 바우슈를 그린 ‘피나 3D’(2011)에 이은 ‘아티스트 3부작’이다. 영화에는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세상을 그리는 사진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겼다. 남미 깊숙한 곳에 사는 시골 사람들을 다룬 ‘다른 아메리카들’을 비롯해 ‘사헬, 이 길의 끝’ ‘노동자들’ 등의 다큐 사진 프로젝트가 현란한 영상을 타고 빛을 발한다.

미술 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술이 영화는 물론 의류 광고 등의 콘텐츠로 활용되면서 연간 1조원 규모의 부가가치가 생기고 수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까지 낳고 있다”며 “미술과 결합한 ‘아트형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