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정희 기자 ljh@hankyung.com
그래픽=이정희 기자 ljh@hankyung.com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28세이던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청과물과 건어물을 팔던 조그만 가게였다. 자본금은 3만원. 이 조그만 가게가 삼성그룹의 모태다. 청년 이병철의 도전이 50여년 뒤 한국 최대 그룹이자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시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쌀가게,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다가 잇단 실패를 맛본 그는 1946년 32세의 나이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렸다. 서울 돈암동의 20평 남짓한 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모은 수백만원을 종잣돈 삼아 재도전에 나섰다.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 경제 성장을 일군 원동력은 이병철, 정주영과 같은 기업가들이다. 지금이야 큰 성공을 거뒀지만 사업을 시작할 당시엔 이병철, 정주영도 이름 없는 ‘벤처기업가’였다. 불확실성 속에서 작은 기회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기업가 정신이 지금의 삼성, 현대자동차를 키워냈다.

지난 십수년간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은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매출 기준 500대 기업 리스트에는 2003년 명단에는 없던 148개사가 새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 가운데 창업 20년 이하의 ‘젊은 기업’은 14곳뿐이다. 134곳은 1980년대 이전에 창업한 성년 기업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 재도약을 이끌 젊은 기업의 싹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가 정신 회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고 있는데 자금·노하우 부족으로 포기하는 미완의 예비 기업가들에게 마음껏 뛸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이 손잡고 17개 시·도에 설치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기업가 정신 부활을 위한 전초기지다. 대기업의 풍부한 자금력과 교육·기술 인프라를 활용해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이미 초석은 놓이고 있다. 작년 9월 대구(삼성)를 시작으로 대전(SK), 전북(효성), 경북(삼성), 광주(현대차), 포항(포스코), 충북(LG) 등이 혁신센터를 열었다. 올 상반기까지 나머지 10개 시·도에도 혁신센터가 세워진다.

기업들은 혁신센터를 통해 이룰 창조경제 청사진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은 광주광역시를 미래 친환경차인 수소전지차 허브로 육성하기로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광주혁신센터를 활성화해 수소차 관련 산업 간 융합을 이루고 창의적 아이디어로 국가 창조경제 실현에 적극 공헌하겠다”고 강조했다.

LG그룹은 충북을 뷰티·바이오·에너지 강소기업의 메카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은 대구와 경북을 각각 ‘벤처 양성의 산실’과 ‘의료기기·로봇 산업 신산업 기지’로 키우기로 했다. SK는 대전을 과학·기술 벤처의 요람으로, 효성은 전북을 탄소섬유 산업의 곡창지대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