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진술만 믿고 과징금 부과…공정위 줄줄이 패소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가 법원으로부터 잇따라 제지를 당하고 있다.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했다’며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에 총 119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는 등 각종 과징금 소송에서 ‘쓴맛’을 보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담합의 확증도 없이 간접 증거만 믿고 무리해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잇따른 패소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공정위 입증자료, 근거 없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패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생명보험회사들이 개인보험에 적용하는 이자율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부과했던 과징금 3653억원을 취소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보험사들이 미래의 예정이율 등에 관한 정보를 교환했다는 것만으로 곧장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엔 5개의 계열사를 통해 구매대행 사업체 웅진홀딩스를 부당 지원했다며 2011년 웅진그룹에 부과한 34억2800만원의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부당한 지원 행위란 사업자가 특수관계인에게 현저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과다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 사건에서는 웅진홀딩스가 받은 수수료가 정상 가격보다 높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2010년에는 진로 등 9개 소주업체에 2007~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출고 가격을 인상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250억원을 부과했다가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당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공정위가 가격 인상에 관한 합의 증거라고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합의했음을 추정해 판단할 만한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고 대형 로펌으로 빠져나가”

대법원은 공정위가 제시한 담합의 근거가 ‘간접 정황에 불과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일부 제보자의 진술만 믿고 뚜렷한 증거 없이 무리해서 과징금을 부과한 게 잇단 패소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변호사 A씨는 “과거에는 담합을 하면 합의서가 증거로 남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보니 제보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겼다”며 “이번에 최종 판결이 난 사건만 해도 공정위는 제보자 양모씨의 진술에 의존해 정유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변호사 B씨는 “최근 들어 대법원이 간접 증거로는 담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명시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도 공정위가 이를 외면한 채 무리한 행정조치를 했다가 패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로 기업 자금과 국고가 대형 로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쓰오일은 이번 소송에서 전직 대법관이 포함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포함된 태평양 변호사 3명에게 사건을 맡겼다. 반면 공정위는 에쓰오일 사건에서 30대 변호사 2명으로 구성된 작은 로펌을, 현대오일뱅크 소송에서는 중소 로펌의 변호사 2명을 선임했다. 공정위가 패소했기 때문에 소송 비용의 상당 부분은 공정위가 부담해야 한다.

양병훈/마지혜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