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면허 무차별 불법 대여…무면허 업체가 4조원대 공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시공 자격이 없는 무등록 업자들에게 건설법인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180여억원을 챙긴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면허 대여업자 이모씨(60) 등 4명을 구속하고 허모씨(37·여) 등 3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발표했다.

이씨 일당은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건당 200만~30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7336회에 걸쳐 299개의 무등록 업체에 법인 명의를 빌려줘 186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일당에게 빌린 명의로 시공된 공사 규모는 4조200억원대로 대부분이 다세대 연립주택(빌라)과 원룸이었다. 이들이 지은 연립주택·원룸은 6만여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씨 일당은 법인을 6개월~1년가량 운영한 뒤 폐업하는 방식으로 매출 신고를 누락해 81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세했다.

이씨 등은 명의대여용 건설법인 설립을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 허씨 등을 통해 법인을 사들였다. 허씨는 건설기술자들에게 건당 400만~500만원을 주고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격증을 대여해 법인을 세웠다. 이렇게 설립한 법인을 한 곳당 1억8000만원을 주고 사들인 뒤 본격적인 대여사업에 나섰다. 이씨 일당이 보유한 법인은 22곳으로 법인 한 곳당 적게는 40여회에서 많게는 770회까지 대여가 이뤄졌다.

건설법인 한 곳이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수백 건의 공사를 시공하는 셈이었지만 당국은 이런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건축행정시스템을 이용하면 특정 법인 명의로 신고된 착공 신고 내용 및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명단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지자체 간에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범행을 막는 데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적발되더라도 징역 3년 이하, 3000만원 벌금 이하로 처벌이 경미해 불법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