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모토로라 아세요?
1983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커다란 기계를 들고 통화를 시도한다. 상대는 라이벌인 벨연구소의 조엘 엥겔 소장이다. “여보게, 난 지금 셀룰러폰(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있다네!” 전화를 건 남자는 휴대폰을 발명한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 이사였다.

당시 쿠퍼가 들고 있던 전화기는 최초의 상용 휴대폰인 ‘다이나택 8000X’였다. 무게가 1㎏이 넘고 가격은 4000달러나 됐다. ‘벽돌폰(Brick Phone)’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당시 카폰 장치가 40㎏이었으니 다이나택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2007년 USA투데이가 꼽은 ‘지난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변화시킨 발명품 25개’ 중 단연 1위에 오른 휴대폰의 탄생 장면이다.

무선통신은 곧 모토로라(Motorola)의 역사였다. 모토로라는 폴 갤빈이 1928년 시카고에서 설립한 갤빈제작소로 출발했다. 초기엔 차량용 라디오를 만들었는데 이때 브랜드가 모토로라였고, 1947년엔 아예 회사명이 됐다. 모토로라는 ‘자동차(motor)+축음기(victrola)’를 합친 뜻이다. 2차대전 때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워키토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때 닐 암스트롱이 지구와 교신한 우주통신기기 역시 모토로라의 작품이었다.

모토로라는 한때 혁신의 심벌처럼 여겨졌다. 1996년 최초 폴더폰 ‘스타택’은 무전기 크기의 휴대폰을 와이셔츠 호주머니 크기로 줄여 선풍을 일으켰다. 세계시장의 30~40%를 점유할 정도였다. 2003년 얇은 ‘레이저V3’로 또 한번 인기를 모았다. GE 소니 삼성 등이 앞다퉈 도입했던 ‘식스 시그마’도 원조는 모토로라였다.

이런 모토로라였지만 몇 차례 판단미스로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말았다. 1991년 77개 저궤도 위성을 띄워 지구를 단일 통신망으로 묶겠다는 ‘이리듐 프로젝트’가 그 전조였다. 1998년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비싼 단말기, 통화품질 등의 문제로 2년 만에 접었다. 본업인 휴대폰도 2007년 아이폰 등장에 치명상을 입었다.

87년 모토로라 제국이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2011년 몸통인 휴대폰 사업부문(모토로라 모빌리티)이 구글에 팔리고, 마지막 남은 통신장비 부문(모토로라 솔루션스)마저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지난해 중국 레노버로 넘어가 10만원대 저가폰을 만드는 회사로 전락했다. 통신장비 부문마저 팔리면 모토로라는 사실상 공중분해된다. 세계를 주름잡던 거인은 몰락도 극적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