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법인세 인상' 카드 만지작
정부와 여당이 ‘증세-복지 축소’ 논란을 돌파하기 위한 출구로 법인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정황이 포착됐다. 법인세 인상의 타당성과 실효성은 낮지만 실타래처럼 꼬여가는 증세냐, 복지 축소냐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야당이 요구하는 법인세 인상을 들어주고 복지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빅딜설’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출국하기에 앞서 8일 인천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인세 인상 가능성 등에 대한 질문에 “그 전에 증세냐, 복지 구조조정이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복지와 세금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정부가 방안을 마련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며 “정치적 공방을 벌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국회가 국민적 합의를 얻기 위해 나서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경환 "세금·복지는 국회 협조 없이 결론 안나"

원론적 답변이긴 하지만 정부 내 기류는 종전 ‘법인세 인상, 절대 불가’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분위기다. 현 재정 여건으로 감당하기 힘든 복지예산을 구조조정하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만큼 정치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것.

이날 최 부총리의 발언은 증세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일 뿐, 법인세를 지목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최근 최 부총리와 의견을 나눠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소득세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세금을 올릴 수 있는 세목은 법인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복지를 지탱하는 정부의 재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연간 210조원(2013년 기준)에 달하는 국세수입.

이 중에서도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 등 3대 세목이 전체 국세수입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약 1600만명의 근로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소득세를 인상하는 것은 최근 불거진 ‘연말정산 파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의 부담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부가세 역시 전 국민이 부담을 지는 세금인 데다 통일 등에 대비한 미래 재원의 성격이 짙어 건드리기 어렵다.

물론 최 부총리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여전히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각국 정부가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데다 세수증대 효과도 극히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적 악화 등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투자심리만 꺾어놓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것 역시 청와대와 정부에 큰 부담이다. 자칫 경제운용 주도권을 상실할 경우 ‘구조개혁 지연→경제 활성화 차질→레임덕 심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