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찔러나 보는 연비 소송
작년 7월 “싼타페 연비가 과장됐다”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 지난달 말 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예율을 통해 소를 취하했다. “재판에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을 그만두는 원고는 이씨뿐 아니다. 최근 6개월간 온라인 카페를 통해 자동차 연비 소송단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만 줄잡아 1000명이 넘는다. 작년 6월 국토교통부가 싼타페와 쌍용자동차 코란도스포츠의 연비가 잘못됐다고 발표한 뒤 연비 과장을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기획소송단에 참가한 5200여명의 20%에 육박한다.

중도하차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자동차를 처분해야 한다”거나 “보상금을 받고 현대차와 합의해 소송을 그만두겠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재판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럼에도 연비 소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예율은 두 차례 연비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작년 10월과 12월 잇따라 3차, 4차 소송을 냈다. 작년 11월 준중형 세단 크루즈의 연비 과장에 대해 자발적 보상 의사를 밝힌 한국GM을 상대로 이달 중 새로운 연비 과장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연비 소송이 잇따르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서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하려면 수백만원의 착수금을 내야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예율은 소송 참가자들로부터 착수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인지대만 받고 나중에 승소하면 성공보수만 받겠다는 것이다.

원고 측 변호사들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미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싼타페 연비 재판에서도 양측은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담당 재판부도 “최소한 두 번 이상의 공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판부 관계자는 “소송을 취하하는 원고도 많은데다 추가 소송도 들어와 원고 명단을 수시로 바꾸는 게 가장 큰 일”이라고 말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소송을 부추긴 결과라면 누구를 위한 소송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