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목수는 드물다. ‘쯧쯧~~어쩌다가’ 하며 혀를 차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최문정 달빛나무 사장(35)은 당당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10년 넘게 현장에서 배운 기술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아름답고 건강한 집을 짓는 데 본격 나섰다.
대학 졸업 후 12년째 목수의 길을 걷고 있는 최문정 달빛나무 사장이 문래동 작업장에서 소품가구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대학 졸업 후 12년째 목수의 길을 걷고 있는 최문정 달빛나무 사장이 문래동 작업장에서 소품가구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앗~불이야.” 한 사람이 소리쳤다. 2006년 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던 충북 충주의 한 목조건축 공사현장. 당시 목수 일을 하던 최문정 씨는 뒤를 돌아봤다. 순간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옷에 불이 붙은 게 아닌가.

그는 추운 날씨에 무려 5겹을 껴 입고 일을 하다가 손이 곱아 톱질이 힘들자 잠시 뒤로 돌아 불을 쬐고 있었다. 두껍게 옷을 입다 보니 불 붙은 것도 몰랐던 것이다. 2012년 여름에는 경남 밀양에서 작업을 하다가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건축현장은 대부분 야외라 화장실을 찾기 어려워 가급적 물을 마시지 않고 일을 하다가 일사병까지 걸린 것이다.

최 사장은 2004년 대학 졸업 직후 톱을 들고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해 10년 만인 지난해 달빛나무라는 1인 회사를 차렸다. 그는 “아름답고 건강한 목조주택을 짓는 책임자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 창업한 것”이라고 밝혔다.

달빛나무는 그의 이름 ‘문(moon)’에서 따왔다. 한때 목수생활을 접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캐나다 밴프에서 잠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할 때 봤던 보강의 아름다운 달빛도 이름을 짓는 데 참고했다. 활처럼 휜 보강은 마릴린 먼로 주연의 ‘돌아오지 않는 강’의 배경이기도 하다.

男 부럽지 않은 女 목수…"남다른 집 만드는 게 제일 행복해"
금속가공 소기업들이 밀집한 문래동 3가의 월세 공장이 그의 보금자리다. 30㎡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다. 달빛나무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굴참나무 단풍나무와 더글러스퍼(북미산 침엽수) 등 10여종의 나무 자재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오른쪽에는 공구와 철물이 10층짜리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휘발유를 넣어 작동하는 기계식 엔진톱과 전기톱, 끌, 태커, 드라이버, 나사, 바퀴 등이다.

그가 목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외환위기로 가세가 기울면서다. 보증 문제로 집을 잃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단국대 체육교육과를 다니던 중 기계체조 연습과정에서 착지를 잘못해 무릎 인대를 다쳤다. 체육교사의 꿈을 접은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손재주가 있었다.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무주에서 열리는 통나무집 교육캠프에 참가하면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달간 일을 배웠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잖아요.” 그는 그길로 책임자를 찾아가 졸랐다. “어떤 힘든 일도 할 테니 목수 일을 가르쳐주십시오.”

이때부터 유목민 생활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다 큰 딸이 옷가지와 공구가 가득 든 가방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여자가 무슨 목수일이냐. 절대 안 된다”며 가방을 빼앗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2년만 지켜봐주십시오. 그때까지 비전이 안 보이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목조주택 공사는 프로젝트당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렸다. 현장은 무주 군산 충주 밀양 정선 순천 양평 양주 등 전국이었다. 시골집을 얻거나 인근 여관을 장기 임차한 뒤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각종 공구로 가득찬 공구주머니는 무거웠고 지붕으로 올라가야 하는 일도 많았다. 얼기설기 목재 뼈대만 올라간 상태에서 3~4m 높이 지붕에서 작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문정 사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최문정 사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공기를 맞추려고 한 달에 단 이틀 쉬고 28일간 일한 적도 있어요.”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옷을 살 시간도 없었다.

“여름 옷을 샀는데 한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지방 작업장으로 떠난 뒤 겨울에 집에 온 적도 있었어요.”

일당은 꼬박꼬박 저축했다. 한 달에 300만원을 모은 적도 있다.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목수 일을 한 지 10여년 동안 그가 지은 집은 40여 채에 이른다.

물론 책임자는 아니다. 목수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터파기, 기초세우기. 기둥과 지붕·벽 세우기 등 거의 모든 과정을 배웠다. 최 사장은 “팀으로 움직이다 보면 이런 일을 전부 함께 할 수밖에 없다”며 “심지어 철근을 드는 일도 남자들과 똑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기둥과 들보는 목재로 세우되 벽은 흙이나 황토벽돌 목재 등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배웠다. 최 사장은 “목조건축은 호환성이 좋다”며 “100년된 한옥을 리모델링할 때도 재건축하지 않고 벽과 일부 자재를 헐어낸 뒤 다른 자재로 채워도 될 정도로 호환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리모델링한 인근 지역의 ‘쉼표말랑’이라는 음식점은 70년이 넘은 한옥이다. 이 중 기둥과 대들보 등 골격은 그대로 놔누고 나머지를 부분적으로 개보수해 분위기있는 음식점으로 재탄생시켰다.

땀흘려 번 돈을 모아 형제들과 힘을 합쳐 서울 화곡동에 부모님을 위한 집도 마련했다. 그의 별명은 문래동 ‘최목수’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목수가 아니다. 가구 인테리어도 제작하는 건축 및 인테리어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1인기업이지만 재능있는 기술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채비도 갖췄다.

“열심히 기술을 익히다 보니 이제는 목조건축 책임자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아름답고 건강에 좋은 목조건축의 완성을 위해선 인테리어와 가구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일을 본격 시작할 생각입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그는 아직 한번도 명함을 만든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손재주가 널리 소문이 나서인지 주문이 끊이질 않는다. 벌써 몇몇 지인이 책상 책장 등을 주문했다.

그의 사업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정성이 담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귀여운 조카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가구와 소품 인테리어제품을 만들고 있지요.”

둘째, 정직한 건축이다. 좋은 자재를 쓰고 제대로 된 집을 짓는 것이다. 단가 싸움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최 사장은 “건축주에게 현장에 자주 와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야 서로 신뢰가 싹트고 왜 이런 좋은 자재를 써야 하는지 이해시킬 수 있거든요.”

어떤 건축주는 몇 달 동안 같이 작업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목조건축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최 사장 역시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목조건축은 소수를 위한 ‘작품’이었지만 앞으로는 다수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활짝 웃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