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CB)를 인수한 상장사가 금융위원회의 유권 해석에 따라 공시를 생략했다가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 법원에서 민·형사상 책임을 물게 된 첫 사례가 나왔다. 법원과 금융 당국의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상장사들과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 14부(부장판사 이종언)는 최근 전 코스닥 상장업체인 이디디컴퍼니 투자자 28명이 회사 법인과 전 대표 최모씨(55), 이디디홀딩스(이하 홀딩스), 에코넥스 등 관계사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상대로 낸 6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지난 15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최씨는 또 CB 인수를 공시하지 않은 부분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인천지법에서 최근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디디컴퍼니는 2011년 말 기준 자산총액 308억원으로 자본건전성이 높은 코스닥 상장사였다. 이듬해 3월 홀딩스는 KTB투자증권으로부터 121억원을 빌려 이 회사를 인수했다. 이디디컴퍼니의 바뀐 경영진은 홀딩스의 모회사 격인 에코넥스가 발행한 150억원 상당의 전환사채(CB)를 전량 인수했다. 당시 에코넥스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었다.

자본시장법 161조와 171조에 따르면 상장사는 양수하려는 자산액이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 총액(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 법인인 경우 연결재무제표의 자산총액)의 10% 이상일 경우 그에 관한 주요사항보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최씨 등은 H대형로펌을 통해 금융감독원에 문의한 결과 “신주 취득이어서 주요사항 보고서를 낼 사안은 아니다”는 답변을 듣고 공시를 하지 않았다. 이후 에코넥스는 CB 발행으로 마련한 자금을 홀딩스에 보냈고, 홀딩스는 KTB에서 빌린 돈을 갚았다. 원고 측은 “결국 홀딩스가 이디디컴퍼니 자금으로 이디디컴퍼니를 인수하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하는 동안 투자자들은 아무것도 몰랐다”며 “회수 가능성이 없는 껍데기 CB를 인수한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져 이듬해 상장폐지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경영진에 대해 범죄 혐의가 있다고 봤다. 인천지법 형사13단독 김효진 판사는 “피고인은 양수도 대상 자산이 자산총액의 10분의 1을 넘어 56.51%에 달하는 금액이었는데도 주요사항보고서를 금융위에 제출하지 않았다”며 “로펌의 법률검토 보고서를 기초로 그와 같은 판단을 했더라도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남기주)는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CB를 인수해 회사에 피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최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공시를 안 한데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이 발간하는 ‘기업공시 실무안내’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기존 발행된 주식(CB·BW 등 포함)이 아닌 신주를 취득한 경우 자산 양수도가 아니라 원시취득(다른 사람으로부터 권리를 승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한 취득)이라고 보고,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금감원 측은 “재무제표 주석 등에 투자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 발생을 막으려면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원고 측을 대리한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현재 금감원과 금융위 판단대로 CB와 BW 인수에 대해 공시하지 않는 회사가 대다수”라며 “상장사들이 이 사건처럼 실무해석을 고의적으로 악용한다면 또 다른 투자자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 해석에 따라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선의의 상장사들도 이후 법적 책임을 질 우려가 생기는 만큼 혼란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소람/허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