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재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5일 1심 판결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으면서 ‘청탁 입법 로비’를 근절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특정 법안을 관철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이익단체 등이 건네는 검은돈의 유혹에 넘어가 입법권을 남용하는 ‘반칙 입법’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쪼갠 후원금'에 농락당하는 입법부
○금품 대가성 입증되면 불법

이번 판결로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놓인 김 의원은 ‘직업학교’라는 명칭에서 직업이라는 단어를 뺄 수 있도록 관련법(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을 개정해주는 대가로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이사장으로부터 현금 5000만원과 상품권 4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법상 입법 로비가 불법이 되는 것은 금품 수수 행위, 즉 대가성이 확인된 경우다. 김 의원에게 실형을 내린 법원은 그가 김 이사장에게 뇌물로 받은 현금 일부를 곧바로 신용카드 연체대금 결제에 사용한 정황을 분석해 돈의 흐름에 대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법당국이 청탁 입법 로비에 칼을 들이댄 대표적인 게 2011년 여야 국회의원 6명이 기소된 ‘청목회 사건’이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는 청원경찰 처우 개선을 위한 청원경찰법 개정(2009년)을 목적으로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 38명에게 총 3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때 동원한 수법이 이른바 ‘쪼개기 후원’으로 청목회 회원과 그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해 의원 한 명당 500만~3000만원을 후원했다.

○검은돈 유혹에 노출된 의원실

이익단체들은 표심과 자금(후원금)을 무기로 소속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회의원을 파고든다. 수많은 민원 요청과 후원금 압박에 시달리는 국회의원은 청탁 입법 로비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새누리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이해당사자가 처음부터 특정 입법을 요구하는 것보다 각종 편의 제공 등 장기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다가 민원 형태로 로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직원들이 10만원씩 후원금을 특정 의원에게 집중적으로 내도록 하는 게 청탁 입법의 대표적 수단이다. 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서 책값 명목으로 돈을 주는 방법도 활용됐다. 그러나 여야가 정치개혁 차원에서 수익성 출판기념회 금지를 추진하고 있어 이 같은 방법은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자칫 정상적인 입법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우리 의원은 보건의료 관련 단체장들과 수시로 만나 필요한 입법도 얘기하고 실무진 차원에서 법안을 받기도 한다”며 “만약 특정 단체에서 우리도 모르게 쪼개기 후원금을 보내기라도 한다면 그냥 불법 로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 후원금 허용 주장도 나와

현행 정치자금법에서는 대가성이나 조건 없이 기부하는 정치후원금만 인정한다.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금으로 후원금을 기부할 수 없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법이 규정한 대로 대가성을 바라지 않고 들어오는 후원금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액수를 제한하고 후원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조건으로 법인 및 단체의 후원금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식 로비스트 제도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로비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막혀 본격적인 공론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정호/은정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