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中企 퇴직연금제도 정착을 위해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난관을 극복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제목이다.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할 때 젊은 시절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말년이 어두우면 인생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받기 힘들다. 반대로 과거가 아무리 고생스럽고 어두워도 성공한 노후는 지난날을 아름다운 추억이라 부르게 한다.

인생 후반부를 위한 준비와 투자는 궁극적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 삶의 총체적 행복을 더해주는 밑거름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발적으로 현재를 희생하면서 노후를 대비하도록 진화된 것 같지는 않다. 행동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먼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현재에 비해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금제도란 이런 인간본성에 역행하는 자발적 노후대비를 제도화해 기본적인 노년 생활을 보장하게 하는 ‘인류 지혜의 산물’이다. 연금제도의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1년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군인금고를 만들고, 20년 현역과 5년의 예비역 복무를 마치면 3000데나리우스의 퇴직연금을 지급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연금제도는 1889년 독일 비스마르크 시대의 노령·장애보험이 시초다.

한국의 연금제도 중 하나로 1988년 국민연금제도에 이어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제도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적립금 약 89조원으로 큰 양적 성장을 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 달리 도입 사업장은 총 27만개소로 전체 사업장의 16%에 불과하다. 이는 소규모 사업장의 낮은 도입률에 기인한다. 500명 이상 사업장 도입률은 85%인 반면 10명 미만 사업장의 도입률은 12%에 불과하다. 한국의 사업장 대부분(85%)이 소규모(10명 미만)이며 이들 사업장 종사 근로자가 전체의 절반(42%)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소규모 사업장의 낮은 도입률은 앞으로 고령사회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연금재원의 사외적립과 수수료로 인한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영세한 사업장의 퇴직연금 운용비용 부담은 경영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 둘째, 중소기업의 인사·노무관리 역량이 취약한 점을 들 수 있다. 퇴직연금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설계, 근로자동의·규약신고, 사업자 선정 등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은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합리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중소사업장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지난해 8월 30명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주요 특징으로는 첫째, 중소기업의 비용부담 완화를 위해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부담금과 수수료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 둘째, 표준형제도 도입 등 가입·운영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사업장의 업무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노·사·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제도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적립금을 운용함으로써 적립금의 안정적 운용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수익 추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제도라는 중소기업에 특화된 한국형 공적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은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퇴직연금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의 성공적 도입·정착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하며, 시행 이후 사업장과 근로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발전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재갑 <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