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불똥…소비시장 벌써 '찬바람'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설 선물세트 중 50만원 이상 고가 상품 비중을 작년보다 10%가량 줄이기로 했다. 소비침체가 지속되는 데다 부유층 소비자들이 세원 노출 등을 우려해 고가품 구매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위축되는 와중에 유통업계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공직자 등의 금품 수수와 관련한 처벌을 강화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동일인에게서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넘는 돈이나 선물을 받은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한 이 법에 대해 유통업계는 ‘소비 상한선’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가 선물세트 판매 위축 우려

설을 한 달여 앞두고 백화점들은 고가 선물세트 판매가 위축될까 걱정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으로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영란법의 정부 원안은 적용 대상을 공무원과 국공립학교 임직원 및 직계 가족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 등이 추가돼 대상자가 국민의 절반 가까운 최대 2000만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법 적용 대상이 크게 증가하면서 소비를 바짝 얼어붙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백화점의 설 선물세트 판매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백화점들은 VIP층의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설 선물세트를 20만~30만원대 중저가 상품 위주로 구성하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중저가 상품 물량을 지난해 설의 두 배로 늘리고 50만원 이상 고가 상품은 줄인다는 방침이다. 현대백화점도 20만~30만원대 상품을 작년 설보다 20%가량 늘리고 고가 상품은 작년보다 다소 줄일 계획이다.

김영란법에서 정한 100만원이 ‘소비 상한선’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법은 1인당 100만원으로 돼 있지만 4~5명이 식사할 때도 100만원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100만원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작용해 외부 인사들과 골프를 치는 것도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선물용으로 인기 있는 여성용 가방은 200만~300만원대”라며 “100만원이 넘는 물건은 선물하지 않으려 하는 관행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위스키 업계 직격탄 예상

위스키 업체들은 ‘설상가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시장이 위축된 마당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 판매가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감소했다. 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접대비 실명제 도입 직후인 2004년 위스키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줄었다”며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기업 예산 축소 시 전방위 소비 위축

김영란법에 따른 소비 위축이 고가 상품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이 법을 의식해 대외 협력업무 전반에 관련된 예산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공무원들과 만나는 횟수를 줄일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일반 식당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50만원 이상 접대비는 증빙자료를 남기도록 한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됐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이 50만원 이상 쓰지 않으려 한다”며 “기업의 특성상 한 번 줄인 예산은 다시 늘리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유승호/김선주/강진규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