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니는 살아있다
“소니 아직 안 죽었네요. 기술력이 대단합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5’의 소니 부스를 찾은 박동건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의 평가다. 두께 4.9㎜의 초고화질(UHD) LCD TV를 꼼꼼히 챙겨보면서 “화질과 두께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웬만한 스마트폰보다 두께가 얇은 데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소니는 삼성의 경쟁 상대가 아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사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고 잘라 말했다. 결코 자만할 때가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박 사장뿐 아니라 이번 CES를 찾은 업계 전문가들은 ‘소니의 약진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잇따라 내놨다.

2000년대 들어 추락을 거듭하던 소니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TV 부문을 자회사로 떼어내는 굴욕을 겪으며 전자업계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했지만, 이번 CES에선 모처럼 의욕적으로 신상품을 선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TV를 비롯 해상도를 기존보다 끌어올린 11종의 UHD TV를 선보였다.

제품 성능만 개선한 게 아니다. 모델 구성이나 콘텐츠 등 다양한 부분을 보강했다. UHD TV는 디자인을 강조한 라인, 음향을 강조한 라인, 가격을 저렴하게 한 보급형 라인 등 셋으로 나눠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UHD급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캠코더도 같이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소니는 ‘제품 성능만 좋으면 그만’이라며 마케팅 등의 노력을 게을리했지만 최근엔 소비자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니의 변신 노력을 두고 “한국 전자업계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상대는 중국이 아닌 일본 업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낮은 가격이나 기술 베끼기 등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보다 오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기를 노리는 소니가 두려운 경쟁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업체는 엔저란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한국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 TV업계가 ‘세계 1위’에 안주할 수 없는 이유다.

정지은 산업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