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가 내년도 신입생부터 F학점(과락) 외에는 재수강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C+ 이하를 받으면 재수강이 가능하다. 무제한 허용했던 재수강 횟수도 ‘재학 중 3회’로 제한한다. 재수강을 하더라도 학점은 B+를 넘을 수 없다. 성적표에는 재수강 내역도 기재한다.

[단독] 중앙대, 재수강 첫 금지…'학점 거품' 없앤다
중앙대 고위 관계자는 8일 이 같은 내용의 재수강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2016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갖출 수 있도록 무제한으로 재수강을 허용해 온 대학가의 관행을 깨겠다는 것으로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불신받는 대학 학점제도 바꾸겠다”

2009년부터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를 도입, 하위 5%에는 무조건 D학점을 주는 중앙대가 이번엔 재수강 제도에 ‘칼’을 들이댔다. 이용구 중앙대 총장은 “기업으로부터 지원자의 대학 성적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대학 교육의 신뢰성 확보는 학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시장에서 학점은 불신받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을 늦추면서까지 재수강을 신청해 평균 학점을 올리고 있어서다. 대학도 이를 방치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지원자들의 학점이 상향 평준화돼 변별력을 거의 상실했다”며 “상당수 대학이 내부 열람용과 취업용(제출용) 성적표를 따로 둬 취업용에는 F학점이나 재수강 여부를 기록하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점에 대한 불신으로 기업들이 영어성적이나 자격증 등 다른 스펙을 중시하자 학생들은 이에 맞춰 또 다른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단독] 중앙대, 재수강 첫 금지…'학점 거품' 없앤다
○대학 졸업생 학점 거품 심각

중앙대의 재수강 제도 개선 방안은 최근 대학구조개혁 논의와 맞물려 ‘학점 다이어트’를 추진 중인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확정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평가지표’에 따르면 학사관리가 차지하는 점수는 전체 60점 중 12점이나 된다. 학점 거품을 방치하는 대학은 정원 축소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외국어대가 최근 2학기 성적 평가 방식을 상대평가로 바꾸겠다고 발표하고 덕성여대가 A학점 비율을 30%에서 20%로 낮추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주요 대학의 학점 거품은 심각하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한국외대는 2013년 졸업생의 75.8%, 서울대는 61.7%가 졸업 평점으로 A학점(백분율 점수 90점) 이상을 받았다. 중앙대는 이 비율이 28.3%에 불과한데도 재수강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국 대학 교무처장 회의에서 논의

이날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대학 교무처장단 회의에서도 중앙대가 내놓은 방안을 논의했다. 이찬규 중앙대 교무처장은 “상당수 대학이 재수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대학 관계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학점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며 “중앙대가 내놓은 방안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재수강 제도를 개편하려면 학생들의 반발을 넘어야 한다. 연세대가 2012년 비슷한 내용의 재수강 폐지안을 추진했지만 학생들이 “왜 우리만 낮은 학점으로 취업에서 손해를 봐야 하느냐”며 반발해 결국 무산됐다. 대학들이 전국 교무처장단 회의에서 공동 추진 방안을 논의한 배경도 개별 대학이 나설 경우 불어닥칠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학들의 움직임에 학생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최모씨(중앙대 경영학부4)는 “특별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낮은 학점을 받은 경우도 있는데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