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브라질 빈민가 출신 스킨십 경영
임직원 초대해 직접 칵테일 대접
매달 한두번 인터넷 채팅방도 열어
직원들 마음 얻는 것 가장 중요시

어릴 때 배운 축구, 경영에 접목
공격은 마케팅부, 수비는 법무팀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팀 승리해
車 업계 영원한 위기는 없어
한국GM, 철수 않고 남을 것


“카이피리냐(브라질 전통 칵테일) 한잔 해보시겠습니까? 제가 만들어 드리죠.”

지난달 말 서울 방배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잇플레이스1-1’.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주요리인 스테이크와 연어구이가 나왔을 무렵, 회사 임직원들을 불러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하던 중 카이피리냐를 제조해 돌렸다는 얘기를 했다. “그 맛이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주저 없이 즉석에서 제조하겠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호샤 사장은 인근에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재료를 가져오게 했다.

‘바텐더’로 변신한 호샤 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칵테일을 만들었다. 지름 10㎝ 정도의 작은 나무 절구로 라임 조각과 설탕을 으깨어 칵테일 셰이커에 넣고, 얼음은 손바닥 위에 헝겊으로 싸서 올려놓은 뒤 나무 공이로 잘게 부쉈다. 으깨진 얼음과 브라질 전통 독주(알코올 도수 38%)를 셰이커에 넣고 흔드니 카이피리냐가 완성됐다.

호샤 사장은 손수 만든 카이피리냐를 한 잔씩 따라 동석자들에게 돌린 다음 ‘위하여’를 선창했다. 이 같은 거침없는 적극성과 친화력은 축구를 좋아하던 브라질 빈민가 출신 어린이를 50년 만에 글로벌 톱 자동차 회사의 한국법인 사장으로 변신시킨 원동력이었다.

○“축구와 경영 모두 팀 승리가 가장 중요”

호샤 사장은 축구를 좋아한다. 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분위기도 부드럽게 할 겸 축구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이곳 파스타와 생선 요리가 훌륭하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찾는 곳”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 그는 프로였다. 직접 구운 따뜻한 빵과 참치 카르파치오(소스를 곁들인 회), 대파 꼬막 요리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싱싱한 해산물은 바다 향기를 입안 가득 채웠다.

“중학교 때까지 세미 프로팀에서 뛰면서 학업과 축구를 병행했습니다. 포지션은 왼쪽 윙이었고 등번호는 호마리우와 같은 11번이었죠. 축구를 그만둔 건 아버지의 조언 때문이었습니다. 특출난 재능이 없는 이상 공부로 성공하기가 더 낫다는 말씀이셨죠. 아버지 생각이 옳았습니다.”

프로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지금도 가끔 축구 실력을 뽐낸다. 한국GM 사장 부임 두 달째인 2012년 5월 노사 친선 축구대회에서 선보인 현란한 드리블 실력은 아직도 직원들 입에 오르내린다.

“하는 것만큼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고향 팀인 코린티안스가 최근 일본에서 열린 클럽월드컵에 참가했습니다. 각 대륙의 최강자들이 겨루는 대회죠. 코린티안스의 준결승전을 보려고 수요일 오전 업무를 끝내고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서 저녁 경기를 본 다음 목요일 오전에 돌아왔습니다. 결승전을 보러 토·일요일에도 같은 일정을 반복했죠. 코린티안스가 우승해서 정말 기뻤습니다. 아내는 이런 저에게 제정신이냐고 했지만요. 하하.”

○“영원한 위기는 없다”

관자를 곁들인 맑은 버섯 수프가 나왔다. 버섯 향이 스며든 쫄깃한 관자는 씹을수록 감칠맛이 났다. 호샤 사장은 “축구와 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곤 둘 다 팀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두 골을 넣었다고 해도 수비가 부실해서 3점을 뺏기면 경기는 지는 겁니다. 팀워크가 좋아 수비가 잘 돼서 실점을 안 하면 한 골만 넣어도 이길 수 있죠. 마케팅과 영업이 공격진이라면 지원 부서는 회사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미드필더라고 할 수 있죠. 감사나 법무팀은 수비진으로 보면 되겠네요.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회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원회의 때마다 저는 ‘우리 모두 같이 승자가 됩시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굴 튀김을 곁들인 리소토와 구운 전복, 소라 등 중간 요리가 상에 오르자 대화가 잠시 끊겼다. 신선한 해산물은 모두 사장이나 주방장이 당일 아침 수산시장을 돌며 사온다는 종업원의 설명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로 화제를 옮겼다. 한국GM의 경영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호샤 사장은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며 “숫자로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내수시장 점유율이 2012년 8.9%에서 2013년 9.8%까지 올라갔습니다. 작년에는 다마스와 라보 생산을 일시 중단했기 때문에 점유율이 내려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외 차종들은 대부분 2013년 대비 15%가량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익성도 좋아졌죠.”

내수는 좋아졌다 해도 지난해 한국GM 수출은 20%가량 줄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GM이 생산하는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데다 동유럽 정쟁 불안이 겹친 탓이다.

“GM이라는 전체 팀의 관점에서 우리는 쉐보레에 대한 유럽 철수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쉐보레 유럽 점유율은 고작 1.1%였고 차를 팔 때마다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었죠. 다만 주요 수출 대상인 동유럽과 중동 시장이 꺾이는 부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 40년간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영원한 위기는 없습니다. 러시아가 지금 어렵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회복할 겁니다. 한국GM 수출도 그에 맞춰 올라갈 거고요.”

○매일 점심은 직원식당에서

그가 한국GM 사장으로 부임한 건 2012년 3월. 이전 사장들의 임기가 3년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3월이면 그도 짐을 싸야 한다. 그러나 호샤 사장은 당분간 한국에서 더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여름 미국 본사와 협의해 임기를 새로 시작했다. 먼 미래인 2100년쯤 한국GM에 다니는 어떤 후배가 ‘호샤라는 선배가 100년 가는 회사가 되도록 이끌었구나’라고 느끼도록 하는 게 내 임무”라고 강조했다.

“2012년 사장으로 왔을 때 실시한 직원 몰입도 조사에서 17%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 GM 지사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죠. 지난해 다시 한 조사에선 44%가 나왔습니다. 무려 27%포인트 올라갔습니다. 세계 어떤 GM 사업부에서도 이런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도 노력했지만 모든 직원이 자기 역할을 해서 바뀐 겁니다. 앞서 얘기했듯 누가 골을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이 이기면 되는 거죠.”

세르지오 호샤 사장이 브라질 전통 칵테일인 카이피리냐를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세르지오 호샤 사장이 브라질 전통 칵테일인 카이피리냐를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호샤 사장의 발로 뛰는 스킨십 경영이 직원 몰입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전국 지방 사업장을 1년에 두 번씩 들러 직원들을 만나 경영설명회를 연다. 직원이 1만2000여명으로 가장 많은 부평 공장은 네 번으로 나눠서 직원들을 만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임직원 전원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터넷 채팅방도 연다. 매일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 회사 식당에서 먹는다.

카이피리냐 얘기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호샤 사장은 1년에 한 번 임원들을 부부동반으로 집으로 초대한다. 브라질 요리를 대접하고 카이피리냐를 돌리면서 1년간의 노고를 치하한다.

“회사가 직원에게 잘하면 직원도 회사에 잘합니다. 이런 전통을 한국GM에 남기고 싶습니다. 사장은 직원들의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제가 항상 웃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리더가 뚱한 표정으로 출근해 보세요. 직원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겠습니까. 리더에겐 일진이 나쁜 날이 있어선 안 됩니다. 숫자는 결과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카이피리냐 한두 잔씩 들고 아이스크림과 비스킷 등 디저트도 깨끗이 비웠다. 자리가 마무리될 무렵 호샤 사장은 묻지도 않았는데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말했습니다. GM은 한국에 남을 겁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세르지오 호샤 "경영과 축구, 비슷한 점 꽤 많아…수비만 잘하면 한 골로도 승리"
■ 세르지오 호샤 사장의 단골집 잇플레이스 1-1
살 통통 오른 꽃게 한마리로 만든 파스타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세르지오 호샤 "경영과 축구, 비슷한 점 꽤 많아…수비만 잘하면 한 골로도 승리"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뜨는 곳이라는 의미의 ‘it place’에 지번(방배동 1-1)을 붙여 상호를 지었다. 정원이 딸린 넓은 가정집을 개조해 2~8인이 들어가는 독립된 방을 여럿 갖추고 있다. 1·2층 테라스에도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서래마을 중심에서 다소 떨어져 조용하고 여유있게 식사를 즐기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주 메뉴는 꽃게 한 마리 살을 가득 넣은 스위밍크랩파스타(1만9000원)와 스테이크(3만2000~4만원). 코스 메뉴는 메인 요리를 오리, 연어, 한우 안심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A코스(평일 저녁 기준 7만5000원)와 양갈비, 한우 안심 중에서 고르는 B코스(10만원)가 있다. 주말에는 파스타 위주의 가벼운 코스 메뉴도 추가하며, 일요일에는 스테이크, 새우 등을 구워내는 바비큐(8만원)도 즐길 수 있다. (02)534-3321

■ 디젤세단·SUV 판매호조…매년2~3% 성장세이뤄

한국GM은 지난해 국내에서 15만4381대를 판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2009년 하락세를 보였지만 2010년부터 매년 2~3%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엔 디젤 모델을 추가한 중형 세단 말리부가 1만9157대로 70% 늘어났고 캡티바 올란도 트랙스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도 각각 20%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다.

■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

▷1959년 브라질 상파 울루 상카에타누 출생
▷1979년 GM브라질 입사 (제품개발 분야)
▷1980년 브라질 브라 즈쿠바스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3년 독일 오펠 국제기술개발센터
▷1996년 GM아르헨티나 로사리오공장 프로젝트 제품 개발·기획 책임자
▷2006년 한국GM 제품 기획 및 프로그램 관리 부사장
▷2008년 미국 GM본사 글로벌 프로그램 총괄 임원
▷2012년 3월 한국GM 사장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